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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06. 2022

불이 꺼지면, 벌레들도 사라진다


휴일을 맞아 오랜만에 지인들과 교외 카페에 다녀오기로 했다. 작년만 해도 1주일에 몇 번씩 교외에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곤 했었다. 물론 그땐 일을 쉬고 있어서 더 여유로웠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말이다. 평일 오전 카페에서 즐기는 한가로운 일상이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맘만 먹으면 가능한 것보다, 가끔씩 시간을 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몸은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평소보다 햇빛이 약한 것 같아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니, 바닥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날씨를 검색하니 오늘부터 내일까지 비 소식이 있었다. 며칠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날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는데 나가려니 비가 온다니. 그럼에도 비가 오는 게 썩 싫지는 않았다. 비 오는 날 특유의 착 가라앉은 분위기는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반팔티와 새로 산 면바지, 슬리퍼를 신고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오전인 데다 비가 와서 그런지 골목길은 한산했다. 큰길로 나가 지인의 차를 타고 카페로 향했다. 비가 오는 날 차 안에서 밖을 보고 있으면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건조하고 뽀송뽀송한 내부와 달리, 문 하나를 둔 바깥은 온통 물기로 뒤덮여있다.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보다, 빗방울에 차에 부딪히는 소리가 이따금 더 크게 들리기도 한다.



약 1시간을 달려 카페에 도착했다. 1층과 2층으로 된 아주 널찍해 보이는 카페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서도 안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다. 카페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도,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차들이 여럿 있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 커피와 빵을 골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메신저로 말하는 것과 직접 만나 말하는 것은 똑같아 보이지만 다른 느낌을 준다. 메신저로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우리는 오감 중 '시각'만을 사용하지만, 누군가와 만나 얘기를 할 땐 최소 2가지 이상의 감각기관을 사용한다. 말하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말을 '듣는다'. 친한 관계일수록 가벼운 '스킨십'을 할 때도 있다. 대화에 사용되는 감각기관이 다양해질수록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카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먼 길을 달려 도착한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와 디저트. 2층에서 내려다보는 비 오는 날의 풍경. 대화를 나누기 전부터 우리 모두 이미 기분이 한층 좋아진 상태가 되었다. 거기다 지난달부터 학원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받은 그림 선물 또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결코 당연하지는 않은 것이다.



오전 10시부터 만나 카페에서 대화를 하고, 조금 늦은 지인의 생일선물로 사러 간 뒤, 음식을 사서 지인 집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고, 함께 영화도 보고, 저녁엔 가볍게 술을 마시며 또다시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었다. 하루 종일 함께 있었음에도 서로의 행동이 불편하거나 기분 나빴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과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다. 다만 알고 지낸 시간이 길어 길수록,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우리는 조금씩 타인과 '맞춰가며' 관계를 유지한다.



어떤 사람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를 흔드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은, 처음부터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려 한다. 또한 곁에 있는 사람이 흔들리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뚜렷한 자기 주관을 갖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내 곁에 '괜찮은 사람'들만을 두는 것이다.



세상엔 다양한 이유로 나를 흔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기에 뚜렷한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굳건히 자리 잡은 생각도 감당하기 어려운 큰일이 닥치면, 뿌리조차 흔들거릴 때가 있다. 바로 '자신조차 자신을 믿지 못할 때' 말이다. 그럴 때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정말로 중요해진다.



자신에 대한 확신과 강건한 믿음이 있는 사람 곁엔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힘들 때,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손을 내밀지 말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누군가는 그의 모습에 실망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이상 그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걸 느낄지도 모른다. 강렬한 불빛을 보고 수많은 날벌레들은 달려든다. 하지만 불길이 약해질수록 수는 점점 작아진다. 마침내 불이 꺼지면 그것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다.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들 또한 사람이기에,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처를 위로받고 싶어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평소 자신에게 잘 대해주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은 본색을 드러낸다.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기대려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평소 먼저 연락하는 것에 거리낌 없다가도, 더 이상 상대방에게 얻을 것이 없다고 느껴지면 냉정하게 돌변한다. 상대방이 냉정하게 말을 하더라도,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것과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게 들린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종종 인간관계의 점검은 필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가 정말 소중하단 걸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누구에게 쓸 지도 점점 신중해진다. 적어도 내가 상대방을 대하는 것만큼 상대 또한 나를 대해준다면 크게 상처받을 일은 없다. 항상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일지라도 미처 보지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다. 당신이 빛날 때 응원을 보내는 사람보다, 당신이 힘들 때 곁에 머물렀던 사람을 기억해라. 그들은 당신이 '어떤' 모습일 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당신'을 보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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