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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07. 2022

'현실적'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웹드라마를 만드는 유튜브 채널인 '짧은대본'에서 "연애 주도권"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다. 연애 몇 번 해 본 사람들이 만나 쉽게 나올 수 있는 행동들이 담긴 에피소드였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상대방이 했을 때, 이것을 기회삼아 주도권을 자기 쪽으로 가져오려는 모습. 자신이 느끼는 감정보다 훨씬 과장해서 분노하거나,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내가 본 영상에도 이런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여자 친구에게서 계속 전화가 걸려오지만, 친구들 앞에서 괜한 폼을 잡으며 '나 이 정도야'라는 행동을 보이면서 전화를 받지 않는 남자 친구. 그러다가 문득 걱정되는 마음에 받은 전화 너머에서, 그는 "미안해"라는 울음 섞인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울고 있는 그녀를 찾아간 그는 길거리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자 친구를 발견한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슬퍼하는 그녀를 보며 미안해하는 그는 그녀를 안으며 나지막하게 "너랑 싸우지 말아야겠다"라고 말한다. 영상은 남자 친구가 속으로 '내일은 사랑한다고 말해줘야겠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결국 이 영상을 통해 연애에서 '주도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의미한지 느낄 수 있다.






우리 모두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길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연애와 현실의 연애 사이에서 괴리감이 더 큰 경우가 많았다.



사실 나는 '현실적'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현실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찾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바라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말한다.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사람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한다.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지만 그런 곳은 집값이 너무 비싸 불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처지가 별로라고 해서, 왜 미래의 자신 또한 그대로라고 생각하는가? 단지 '현실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상상을 하는 것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현재 우리는 눈부신 기술의 혜택들을 별생각 없이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극을 침대 위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다. 필요한 걸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일주일 내로 집 앞에 물건이 배달된다. 사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인 것이다. 만약 인간이 '현실적'인 사고만 했다면, 우리는 현재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로 불가능해진다. 가능할 거라 믿는다고 해서 모든 게 이뤄지진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그것을 믿고 행동하는 순간부터 그것이 이뤄질 가능성은 결코 0%는 아니게 된다. '현실'이라는 단어는 이미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추구하던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현실이니까"라는 말은 그럴싸한 변명거리가 된다. 스스로를 상식적이고 영리한 사람으로 포장함과 동시에, 마음의 짐을 한결 내려놓기 편해진다.



반대로 이상을 추구하면 바보처럼 보이기 쉽다. '네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러는데'라던가 '한 번 해보면 얼마나 힘든지 너도 알게 될 거다', '세상이 네 맘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같은 말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지 모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조차 현실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줄 알았던 사람들일수록, 상상조차 못 한 멍청한 짓을 쉽게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현실을 추구하든, 이상을 추구하든 그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타인에게 좋은 소리 들을 기대는 포기하며 사는 게 맘 편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상을 추구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99%의 세상을 현실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도, 단 1%의 측면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이상을 추구하며 사는 삶은 꽤나 고통스럽다. 어쩌면 당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직업, 세상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을 항상 갖고 살아간다는 게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의 가장 큰 고통이다. 하나 자신이 추구한 이상들 중 하나라도 현실로 만든 사람은, 그 짜릿한 쾌감을 결코 잊지 못한다. 나 또한 그런 부분이 있었기에 여전히 이상적인 삶을 꿈꾸며 살아간다.



당신의 외모나 직업을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당신을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까?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적어도 당신이 이루고픈 이상이 있다면 당신 또한 스스로 꿈꾸는 이상에 가깝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믿는 사람만이 행동하며, 행동하는 자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쓸데없는 주도권 실랑이보다 당신과 상대방이 진심으로 서로를 믿고 사랑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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