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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09. 2022

독립했어요, 글쓰려고.


어느덧 혼자 산 지 5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올해 초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그전까지 몇 번이나 독립을 맘먹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내가 어떻게 독립을 하게 되었고, 독립 후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 풀어보려고 한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 내게 집이라는 공간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서로의 생활 방식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는 집을 '쉬는 곳'이라고 생각한 반면, 어머니에게 집은 '관리해야 할 곳'이었다. 내 눈엔 뭐가 더러운 지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어머니는 집이 더럽다며 거의 매일 청소를 하셨다. 집에만 있으면 나를 향한 어머니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버지 또한 매우 가부장적인 성향으로 조금만 실수하면 버럭 화를 내곤 하셨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더라도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내 방에서만 보냈다.



그러다 타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했지만 매일 같은 야근과 상사와의 기숙사 생활은 내게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결국 인턴생활을 포함해 약 반년 동안의 타지 생활을 끝으로 나는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부터 '나만의 공간'에 대한 로망이 조금씩 커지게 된 것 같다. 왜냐하면 어딜 가더라도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점점 속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이 커지던 중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보다 많은 월급을 받진 못했지만, 어쨌든 '일을 하고 있다'라는 게 내겐 큰 기쁨이자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적은 돈이라고 해도 다시 돈을 벌기 시작하자,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독립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맘 때쯤 모임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힘들었던 내게, 그것은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나이가 어린데도 나보다 훨씬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하면 할 수 있다'라는 자신을 조금씩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젠 정말 독립을 하더라도 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때도 독립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주변에 독립한 사람들에게 "독립하니까 어때?" "나도 독립하려고"라는 말만 했지, 정작 그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 건 없었다. 살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후회가 아예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만약 이때 내가 독립을 했다면'이라는 생각을 요즘에도 종종 하곤 한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독립에 대한 생각만 하고 결정은 하지 못한 채, 2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일하던 곳이 영업을 정지하기로 했다. 분명 허투루 돈을 쓰진 않은 것 같은데 돌아보니 모아둔 돈도 별로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불행할 때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크게 다가오듯, 반대로 행복했던 순간 이후 내게 닥친 일들은 대부분 좋지 못한 일들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면 첫 번째 직장을 다닐 때와 작년 한 해, 둘 중 언제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온 세상이 나를 통째로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땐 혼자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집에 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힌 채 보냈지만, 그래도 다른 방엔 부모님이 계셨다. 그리고 그것이 전처럼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때부터 독립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엔 부모님과 부딪히는 게 싫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립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힘들 때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으로 인해 위안을 받은 뒤부터는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자 점점 날씨가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힘든 시기도 지나가고 나니 오히려 초연해진 기분마저 들었다. "지금까지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힘들어봤자 얼마나 더 힘들겠어?"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일찍 오픈하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조금씩 힘을 내보기로 했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해봤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질리지 않고 평생 해도 괜찮은 일이 내겐 어떤 일인가. 고민 끝에 나온 답은 '글을 쓰는 삶을 살자'였다. 단순히 소설이나 시처럼 장르가 정해진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게 결론이었다. 하지만 내겐 글 쓰는 습관조차 들여지지 않은 상태였다.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집에서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고 4개월 단기 계약직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도 일할 수 있는 곳은 많았다. 실제로 면접을 보러 간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2가지였다. '정시 퇴근'과 '적당한 업무'.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힘든 일을 하면, 퇴근 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글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야근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출근하기 위해 오전 6시 40분에 일어나야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으니까.






그렇게 일을 하고 퇴근 후엔 글을 쓰는 일상을 보내던 중,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정규직으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회사 측의 제안이었다.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보다 훨씬 더 일을 빠르게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 집에서 회사까지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4개월 동안 지각을 하지 않았던 게 조금 크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내겐 썩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그리고 그 기회는 또 다른 의미의 기회이기도 했다.



정규직 제안을 받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만약 정규직 전환 이후에도 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지금은 아르바이트 신분이라 회사에서 내게 크게 바라는 것도 없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면 여러 가지가 달라진다. 월급도 오르지만 그만큼 책임져야 할 부분도 더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 지금보다 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하는데, 1시간 출퇴근은 분명 힘든 부분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때부터 인터넷으로 회사 근처 괜찮은 집들을 찾기 시작했다. 괜찮은 곳이 보이면 부동산에 연락해 퇴근 후 방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 대학교 근처라 월세는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1주일 간 방을 보러 다닌 끝에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할 수 있었고 계약서까지 작성한 후에야 부모님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처음엔 많이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셨지만, 그래도 좋은 쪽으로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몇 년을 미루고 미뤘던 독립은 불과 한 달만에 속전속결로 끝이 나게 되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생애 첫 집들이를 했고, 집들이 선물을 받았다. 한 순간의 귀찮음으로 설거지를 미루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왜 그토록 방청소를 자주 하셨는지도 이제야 이해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글 쓰는 삶을 위해 여러 공모전에도 지원했고, 그 과정에서 '브런치'라는 사이트도 알게 되었다. 작가가 된 후부터 가능하면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고 있으며 카카오 뷰 '브런치 에세이' 채널에 내 글이 메인으로 2번이나 올라가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독립하게 된 과정을 나름대로 간략히 써 보았다. 글을 쓰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떠오르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지만 분명한 사실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독립했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것이다.



꼭 독립이 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살다 보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이 문득 떠오르거나, 정해지는 순간이 있다. 만약 자신이 어떠한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바라보고 원하고 있다면,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 독립은 좋은 수단 중 하나가 된다. 오롯이 혼자가 될 때, 인간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전보다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발판 삼아 더욱 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만약 지금 당신이 나와 비슷한 이유로 독립을 꿈꾸고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그것을 응원한다. 처음부터 꼭 좋은 집에서 살 필요는 없다. 고시원이 됐든, 원룸이 됐든 일단 혼자서 살아보는 게 중요하다. 당신이 지금보다 더 원하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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