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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10. 2022

변했다, '네'가 아닌 '내가'.


지난 주말에 지인들과 영화 '위대한 쇼맨'을 봤다. 영화 속에 휴 잭맨, 젠데이아 등 익숙한 인물들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뮤지컬 영화답게 다양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중에서 오늘은 이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잠깐 언급해보려고 한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뻔하다면 뻔한, 그런 이야기다. 매우 가난하게 자란 남자 주인공과, 부잣집에서 자란 딸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된 남자는, 점점 주변을 챙기지 않고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위해 살아간다. 그러다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아마 이것을 읽고 있는 당신도 머릿속에서 '이런 내용의 영화를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가난하지만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부를 거머쥐며 조금씩 예전과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 이 영화는 주인공이 지난날을 후회하며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채 끝맺는 영화들도 있다. 어쩌면 그게 더 현실과 가까울지도 모른다.






영화 초반부에 남자가 딸의 생일을 맞아 각자 소원을 비는 장면이 있다. 두 딸의 소원을 듣고 난 후 그는 아내에게도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밝게 웃으며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 남자가 돈과 명예에 눈이 멀어버린 후, 그는 아내와 다투게 된다. 모두를 위해서였다는 그의 말에 아내는 이렇게 답한다. 자신은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으며, 그때도 충분히 행복했다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는 가족도, 재산도 모두 포기했다. 비록 현실은 초라했지만 그녀는 남편과 두 딸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자신들이 아닌,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도 괜찮았는데 말이다. 결국 어렸을 때부터 그녀가 사랑했던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모든 건 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는 말했지만, 정작 가족들은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필요한 건 하나였다. '그'이자 '남편'이자 '아빠', 단 하나. 그거면 충분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현실을 반영한다. 어쩌면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말을 했던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 너를 위해서였어", "네가 걱정할까 봐 그랬어"와 같은 말들 말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다툴 때 주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이다.



모순적이지 않은가? 말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그 마음을 알지 못했다. 더 나아가 말을 들어도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런 류의 말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준에 의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상대가 좋아하겠지', '내가 지금 바쁘게 사는 건 결국엔 걔를 위한 거지'라는 자기 최면의 일종이다. 정말로 상대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생각처럼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다. 상대의 의견을 들어보고 자신의 생각과 같다면 그대로 행동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남 탓'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상황과 사람에 관계없이 '남 탓'은 쉽고 다양한 방법으로 응용이 가능하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서운해하면 "뭘 그런 거 가지고 서운해하냐"라고 하면 된다. 자신이 실수로 상대방이 피해를 보더라도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왜 그렇게 소심하게 구냐"라고 해버리면 끝이다. 내가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해버리면, 어떤 문제든 내 책임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본인이 어쩌면 가장 잘 알 것이다. 사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건 내가 어리석고 멍청하기 때문이라고. 그걸 인정해버리면 내가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아 너한테 화살을 돌리는 거라고.  



모든 일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각자 지니고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 마지노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더라도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욕을 먹으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노를 드러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다거나, 그 사람을 꼴도 보기 싫은 마음에 자리를 피해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 어쩌면 당신은 친한 친구, 연인, 가족의 달라진 태도에 서운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행동은, 내가 느끼는 감정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다. 당장의 서운함과 분노를 추스르는 게 결코 쉽진 않겠지만,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해냈을 때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감정에서 물러서 스스로 깊게 생각해보라. 그들이 당신을 서운하게 한 건지, 아니면 당신이 그들을 서운하게 만든 건지. 당신이 다른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넌 변했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같은 곳에서 하염없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인간관계에서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고, 앞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문제가 되는 순간이 닥쳤을 때 당신이 가장 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먼저 사과'를 하고, '남 탓'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내가 잘한 것'이 아닌 '상대방이 내게 해 준 것'을 떠올려보라. 당장의 상처는 상대보다 당신에게 좀 더 크게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끝이 나더라도 당신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인간관계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당신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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