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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11. 2022

새로 생긴 돈가스 가게는 포장이 안된대


당신은 계획적인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둘 중 하나를 굳이 고르자면, 나는 무계획에 가까운 사람이다. 여행을 갈 때도 세세하게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보통 묵을 숙소 정도만 예약하고, 전날 저녁 또는 출발 당일에 스케줄을 정하곤 한다.



행동할 때도 이런 무계획성은 그대로 드러난다. 며칠 전 집 근처에 새로운 돈가스 가게가 생겼다. '가봐야지'라고 생각만 하던 중에, 퇴근 후 배가 고픈 상태에서 집으로 향하다가 돈가스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와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분께 돈가스 하나를 포장하려고 한다고 하자, 포장은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약간 김이 새서 결국 그대로 나와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혹자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들어간 김에 먹고 나오면 되지"라고. 굳이 먹고 나오지 않은 이유는 애초에 돈가스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맛있게 먹기 위해 계획했던 게 성사되지 않으면서 그마저도 흥이 식어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충동적인 행동이며, 그로 인해 얻은 건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분명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당분간 매장 식사만 가능하고 포장은 불가능하다는 것. 이처럼 '행동한다는 것'엔 반드시 모종의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내가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내 삶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아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존재할까. 그렇지만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 대학교에서 전공과 관련된 자격증을 여럿 취득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관련된 일도 할 수 있었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내겐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정리하면 계획적인 삶을 살진 않았지만, 해보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이뤘던 것이다.



성공한 많은 이들이 계획의 중요성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이 계획보다 더욱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계획의 실천'이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보다 효과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다. 즉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함과 동시에 행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결국 행동 없는 계획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않고 있다.






연말,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리를 산다. '올해는 작년처럼 보내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이어리를 구매한 수많은 사람들 중, 자신이 세웠던 계획을 이룬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세웠던 계획 중 절반이라도 이룬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행동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계획에 더욱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시험 기간에 공부하기 전 책상 앞에 앉은 뒤 바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보다, 잠깐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책상을 닦았던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것만 하고 이제 시작해야지'.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한 번 미루기 시작하면 두 번째는 더욱 쉽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빠르면 30분 후, 1시간 뒤에나 계획했던 무언가를 시작했던 기억이 나는가? 그나마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겼다면 다행이고, 하지 않고 다음날로 미룬 적도 있을 것이다.






결국 계획은 행동력을 키우기 위한 보조 수단일 뿐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긴 힘들다. 밥을 먹기 위해 수저가 필요하지만, 수저가 있다고 해서 배고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수저를 활용해 밥과 반찬을 먹는 행위를 해야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행위든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단지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 마치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기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계획을 세우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보단, 당장 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게 훨씬 더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 또한 행동을 하다 보면 더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애초에 자신이 세운 계획은, 직접 해보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지나치게 계획을 세우는데 에너지를 쓰는 건 결코 좋은 행동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조금 무모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해보고 무모함을 아는 것과, 상상만으로 짐작하는 건 다르다. 글 초반에도 말했지만 행동엔 반드시 어떠한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습득한다. 비록 나는 방문한 가게에서 돈가스를 먹진 않았지만, 아직 포장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지인 중 한 명이 그 가게에 가서 포장을 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면, "거기 아직 포장이 안된대"라고 알려줄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의 모든 행동은 반드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 아무 의미 없는 짓을 했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니니까. 당신에게 더 많은 행동력이 생기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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