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 나가서 프레드릭 베크만 작가에 대해 소개를 할 때 내가 자주 쓰는 방식이 있다. 먼저 작가의 이름을 말한 뒤 "이 작가분의 가장 대표작은 '오베라는 남자'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면 처음에 이름만 듣고 그게 누구인지 갸우뚱했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아하'라는 표정을 짓는 걸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만큼 프레드릭 베크만 작가가 쓴 책들 중 가장 유명하고 대표 격인 작품이다('오토라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 책은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걸까?
줄거리
책 속의 주인공은 제목처럼 '오베'라는 중년 남성이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오베의 모습은 '진상'인 동시에 '꼰대' 그 자체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을 꼬투리 잡아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가 하면, 원칙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화를 내곤 한다. 예를 들어 꽃다발 2개를 만원에 파는데 자신은 하나만 필요하니 5천 원만 지불하겠다며 가게 주인과 싸우는 식이다.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자동으로 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썰로 들으면 '독특한 사람'이라며 웃고 넘기겠지만 막상 내 주변에 저런 이웃이 있다고 상상하면 정말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오베의 집 근처로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오게 되며 이야기는 서서히 진행된다. 갑자기 생긴 시끄러운 이웃들 때문에 오베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무언가를 자꾸만 실패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오베가 겪었던 과거의 사건들을 알게 되고, 왜 그가 그토록 원칙에 집착하고 무채색의 일상을 보내게 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그가 객관적인 사실에만 집중하기에 오히려 개방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부분도 볼 수 있다. 어쨌거나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어 가고, 개인적으로는 꽤나 괜찮은 결말로 끝을 맺는다.
삶에서 '사랑'이란 어떤 힘을 갖고 있는가
이 책에서 오베는 꽤나 강인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는 내면에 큰 슬픔 또한 갖고 있는데, 그 원인은 바로 그가 삶의 어떤 시점마다 '사랑하는 것'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더욱 슬픈 건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걸 잃어버렸으며, 그 원인 또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소설 속에서 오베가 딱 한 번 우는 장면이 있는데, 다름 아닌 과거와 비슷한 이유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이 분노하고 화를 내도 거스를 수 없는 힘 앞에 무력해진 자신을 마주하는 건 언제나 괴롭고 슬픈 경험이 아닐까.
'오베라는 남자'는 인간이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가는지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힘든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말도 안 되는 운을 거머쥐며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걸 누군가는 아주 손쉽게 해내는 걸 지켜봐야 할 때도 있고,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나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언젠간 잘되겠지'라는 생각도 한두 번이지, 실패가 계속되면 그런 생각을 하는 힘조차 부족해질 때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거듭된 실패를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선 2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두 번째는 '함께 걸어갈 누군가의 존재'이다. 아무리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도 혼자선 한계가 있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 있어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다. 소설 속 오베도 마찬가지다. 그의 일상이 다시 빛날 수 있었던 건 곁에 새로운 사람들이 생겨난 덕분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구조한 고양이부터 새로운 이웃, 오랫동안 교류하지 않던 사람들과 다시 교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삶은 조금씩 달라진 것이다.
또한 소설에선 남겨진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오베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뿌린 사랑이, 시간이 지나 다시 오베에게 돌아오는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묵직한 울림을 느끼게 해 준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 이름도 몰랐던 누군가가 나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을 추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곁에 없다는 현실이 아릿하면서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할 것 같다.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적절한 분량, 탄탄한 내용,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그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위트 있는 묘사들은 내용이 점점 진행되며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뒤에 소개할 '베어타운' 시리즈도 정말 재미있긴 하지만, 일단 책 두께가 두껍다 보니 처음 접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오베라는 남자'는 프레드릭 베크만 작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딱 안성맞춤인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오베가 끝내 배운 것은 아주 단순했다. 혼자서는 끝까지 가지 못한다는 사실. 상실을 통과하게 한 힘은 결국 ‘계속 나아가려는 의지’와 ‘곁을 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의 일상이 다시 빛을 띠기 시작한 것도 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한 '규칙'이 아니라 '함께' 덕분이었다. 이제 다음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게 열린다. “미안해, 그리고 부탁이 있어.” 다음 편에서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서 사과가 어떻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시 잇는지, 그리고 다름을 지키는 용기가 어떻게 한 아이와 한 동네를 구하는지 이어서 이야기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