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at Jun 16. 2022

힘든 사람에게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독이다


10년 지기 절친과 몇 달 정도 알고 지낸 친구. 당신은 두 사람 중 누구에게 고민을 말하기 편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10년 지기 절친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절친이 아닌 친구를 선택한 사람들도 은근히 많다는 걸 알게 된 적이 있다.






여느 때처럼 지인과 만나 최근 일상에 대해 얘기를 했던 날이었다. 각자 사는 얘기, 요즘 하는 고민 등 별의별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상대가 내게 말했다. "그런데 너 그거 알아?" "뭘?" "가끔 나를 정말 아껴주는 사람들한텐 너무 큰 고민은 말하기가 쉽지 않더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에게 고민을 말하기가 힘들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상대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너를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이면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냐?" "음... 그게 말이지. 나를 아끼는 마음이 큰 사람일수록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오히려 미안해지더라고. 괜히 그런 얘기해서 더 걱정하게 만드는 것 같고, 그런 모습을 보는 나도 불편해지고... 그러다 보니 안 지 얼마 안 된 사람한테 더 편하게 말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냥 입을 다문채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사실 그땐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흘러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겪은 후에야 그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믿어주는 사람들. 내가 밖에서 어떤 일을 겪었던, 그 사람들은 내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주고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아마 당신도 힘든 일이 닥치면 머릿속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화를 내거나 욕을 할 수도 있지만 결국엔 내 옆을 지키고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기대치에, 내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어떨까. 그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그들의 응원 덕분에 마치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던 건 아닐까.


 




한 어린아이가 있다. 아이는 부모에게서 항상 "너는 최고로 똑똑한 아이야!"라는 칭찬을 매일같이 듣고 살았다. 식탁 아래 잘 보이지 않던 쓰레기를 발견해 버렸을 때도, 외출 전 미처 끄지 않은 불을 끄고 나왔을 때도, 부모가 지난번에 잠깐 언급한 말을 기억했을 때도 말이다. "너는 정말 똑똑해!" 그래서 아이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학교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아이는 친구들에 비해 자신이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맞이한 첫 시험 날, 아이는 당황했다. 분명 자신은 똑똑한 게 맞는데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반 평균보다 못한 점수를 받게 되었다. 아이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시험 결과를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아이의 말을 들은 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란다. 너는 똑똑하니까 다음 시험엔 분명 반에서 1등 할 수 있을 거야!" 아이는 부모의 말에 다시 용기를 얻었다. '그래, 이번 시험은 실수였을 뿐이야.' 아이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다음 시험일에도 아이는 절망감에 빠졌다. 지난번과 비슷한 점수를 받은 것이다. 분명 지난번보다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말이다. 집에 온 아이를 반기며 부모는 활기차게 물었다. "오늘 시험은 어땠니?" 아이는 쭈뼛대며 말없이 시험지를 가방에서 꺼내 부모의 손에 건넸다. 그리고 아이는 똑똑히 보았다. 기대에 찬 부모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는 것을. 입가에 걸린 미소가 아까보다 조금 내려갔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부모는 여전히 아이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며 부모는 말했다. "괜찮단다. 꼭 공부를 잘하지 않더라도 네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매우 슬퍼졌다. 왜냐하면 더 이상 부모는 아이에게 똑똑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당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의 응원은 힘이 된다. 하지만 그 응원이 항상 힘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 편이며, 내가 무슨 행동을 하던 응원 해준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가끔 당신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 때도 있다. 그 사람이 기대한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의 괴리감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그들의 사랑이 버거워지도 한다.



힘껏 달리고 싶을 때 누군가의 응원은 더욱 빨리 달릴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힘이 들어 잠시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역시 잘 달릴 줄 알았다고. 다른 사람들은 진작 포기했을 텐데 대단하다고. 쉬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텐데 여전히 잘 달린다고. 앉기 위해 멈췄던 다리가 멈칫하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가끔은 그 어떤 관심조차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있다. 스스로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칭찬이고 나발이고 그 누구도 내게 신경 쓰지 않길 바랄 때가 있다. 누군가는 그럴 때일수록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도움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나 도움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오히려 힘들 때일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 또한 존재한다. 만약 당신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과도한 칭찬이나 도움을 주려는 행동은 조금 자제할 필요도 있다. 인간의 삶엔 반드시 힘든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며, 그것을 겪어야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당신이 그 사람을 걱정하고 잘 되길 바란다면, 단 하나만 준비하면 된다. 그 사람이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다시 힘을 내려할 때, 기다렸다는 듯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 그거면 된다.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배려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정적인 감정엔 분명 이유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