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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15. 2022

부정적인 감정엔 분명 이유가 있다


가끔 급격하게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군가 툭 던진 말 한 마디나 행동에 기분이 팍 상한 적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잊어버렸을 텐데 유독 그날따라 그 사람의 말이 머릿속에서 잊히지가 않는다. 혹시 당신도 이런 적이 있는가?



예전에 읽은 한 심리학 관련 책에선 무의식이 행동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고 나와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큰 소리로 다투는 것을 본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큰 소리가 나면 매우 긴장을 하거나 남들보다 훨씬 놀라기도 한다. 애정결핍이 있는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떠는 습관이 생긴다는 것도 흔히 알려진 얘기다. 친구 사이에서도 종종 이런 일들이 있다. 평소처럼 장난을 치고 놀다가 장난으로 던진 농담 한 마디에 친구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아마도 화를 낸 친구에겐 그 농담과 관련된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당신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부모님과의 심한 다툼, 헤어진 연인과의 이별 과정, 친한 친구와 싸웠던 경험 등을 겪으며 유달리 기억에 남는 표현이나 행동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트라우마처럼 남은 이 말과 행동은, 시간이 지나도 당신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다. 당시의 힘들었던 감정들도 그저 잊혔을 뿐, 여전히 묵혀져 내면 깊숙한 어딘가에 응어리처럼 고여있는 것이다. 당신도 모른 채 말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실수를 꽤 많이 하는 편이었다. 한 번은 어머니와 함께 집 근처 슈퍼마켓에 간 적이 있었다. 딴에는 어머니를 도와드리겠다고 지갑을 내가 들겠다고 고집을 피워, 결국 지갑은 내 손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슈퍼마켓에 도착해 필요한 물건들을 골라 계산대 앞까지 가서 어머니가 지갑을 달라고 하셨고,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지갑이 없었다. 불과 집에서 슈퍼마켓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날 굉장히 혼났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식으로 황당한 실수를 여러 차례 하다 보니, 부모님께선 내가 무언가를 할 때 잘하고 있는지 빤히 지켜보곤 하셨다. 그러다 실수라도 하면 화를 내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무언가에 집중하다가도, 누군가 나를 쳐다본다는 걸 알면 그때부터 지나치게 긴장을 하곤 한다. 온몸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으니 평소 잘하던 것도 잘 될 리가 없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상황이 닥쳤을 때 아예 긴장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으면 의식적으로 크게 호흡을 하거나, 틈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곤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 내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나만 겪는 특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것이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어찌 보면 평범한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이 못 미더운 사람이라고 느낄 때,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알게 되었을 때 등 각자 평소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상황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들(말 또는 행동들)은 대부분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경험들 중 유독 힘들었던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마 그런 적이 있었을지 모른다. 평소처럼 넘기지 못하고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거나, 아니면 정말 화를 내버릴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던 말과 행동들이. 누군가의 시선에선 당신의 행동이 속 좁은 듯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볼 지, '내가 왜 그랬지'라며 자책하는 행동을 보일 것이 아니라 '왜 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의 끝엔 당신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분명 있을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비가 와서 평소보다 차분해지거나 하는 것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의 분노 제어기를 단숨에 뚫어버릴 만큼, 당신을 예민하게 만드는 말과 행동이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보라. 왜 그것이 그토록 당신의 분노를 들끓게 만드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이것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행복해지는 건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것들을 많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분노를 유발하는 것을 멀리하기만 해도 삶은 전보다 즐거워진다. 또한 자기가 분노하는 것에 대해 원인을 아는 것만으로도 전보다 덜 화를 낼 수 있게 된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화냈던 일이 별 시답지 않은 일일 가능성도 있다. 쉽게 말하자면, '그만큼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 당신이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면 생각해보라. 왜 화가 났는지, 과거에 비슷한 일로 화를 냈던 적이 있었는지, 정말 그 정도로 화가 나는 일이었는지 말이다. 보통 이렇게 몇 분만 차분하게 생각을 해도 감정은 금방 수그러든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내가 그 사람이었더라도 나한테 화낼만했겠는데?" 결국 이 모든 사고와 행위는 나 자신을 위해서다. 분노의 원인을 찾아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기 위함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별 수 있겠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원하게 그 사람에게 한 마디 해 주길 바란다. "이런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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