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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14. 2022

설렘이 아닌, 편안함이 필요한 그런 날


그런 날이 있다. 별생각 없이 집 밖으로 나왔는데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씨가 좋은 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공기의 온도가 느껴지는 날. 이런 날은 갑자기 사람이 그리워진다. 개그코드가 비슷한 사람과 함께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별 시답잖은 얘기들을 주고받고 싶어 진다. 이런 얘기를 지인에게 하자, 그는 내게 연애가 하고 싶은 것 아니냐며 웃었다. 나도 그저 웃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연애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서로가 서로를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특별함 덕분에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정작 그 특별함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사랑을 하면서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된다. 타인과 연인을 크게 다르지 않게 바라보면 된다. 그러나 특별함이 없다면 친구와 연인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 고로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도 크지 않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꼭 상처를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연인이 내게 내는 생채기 하나가, 때때로 타인이 내게 주는 커다란 상처보다 몇 배는 더 아프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과 똑같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느껴지는 무게는 다르다.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 느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큰 가치가 있는 것일수록 그만큼의 리스크를 짊어져야만 한다. 사랑에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은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을수록, 어떤 곳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직장에서는 이만큼, 취미 생활엔 이만큼, 집안일엔 이 정도. 특히 대인관계에서 에너지의 분배는 더욱 신중해진다. 누구에게, 얼마큼의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는지가 그 사람과의 친분을 나타낸다. 나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매우 강한 편이라 이 에너지의 분배가 생각보다 쉽게 이뤄진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내 시간을 잘게 쪼개서 나눠주기보단,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 큰 덩어리째로 에너지를 쏟는다.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자극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는 만났던 사람들 중 좋았던 사람들을 여러 번 보는 걸 더 선호한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만나는 것처럼, 한 번 꽂힌 노래 또한 질릴 때까지 반복해서 듣는 편이다. 나는 죠지라는 가수의 '바라봐줘요'라는 곡을 가장 좋아하는데, 작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들었음에도 질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만약 내가 음원 하나만 반복해서 들었다면, 진작 이 노래에 질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노래에 꽂힌 후로, 죠지라는 가수가 이 곡을 부른 라이브 영상을 유튜브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보았다. 같은 노래지만 영상에 따라 가수의 표정과 목소리, 청중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노래는 언제, 어떤 감정 상태에서 듣는지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출근길과 퇴근길, 맑은 날과 흐린 날, 노을이 질 때, 비가 오는 날, 휴일에 놀러 간 카페에서 등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도 노래는 다르게 들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상태로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전과는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과 같다. 어제 만났던 사람을 다음날 보더라도, 그 사람은 내게 다른 사람으로 인식된다. 만났을 때 편하고 좋은 사람은 만날 때마다 시나브로 바뀌어 있다. 도저히 질릴 틈이 없다.






마음 편하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부담 없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비슷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비슷한 생활패턴으로 살아가는 사람 말이다.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연락해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 얼굴을 보지 못하더라도 전화로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 저녁에 날씨가 좋아서 갑자기 산책을 해도 괜찮은 그런 사람이.



그런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각자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나와 영혼 없는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집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카페인 충전을 하는 날. 어차피 내일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디카페인 커피를 고르고, 대신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를 각자 먹고 싶은 걸로 주문하는 날. 카페에서 죠지의 '바라봐줘요'가 들린다는 걸 안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치고 씩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날. 각자 먹기로 했지만 둘 다 알아서 반을 나눠 상대의 앞으로 쓱 밀어놓고는 말없이 커피를 마시는 날. 무슨 일 있냐, 왜 그러냐라고 묻지 않아도 그저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과 마감 시간까지 커피 향을 맡으며 쉴 수 있는 그런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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