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집안일이 얼마나 귀찮은지 잘 알 것이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방 청소나 식사를 하고 나서 설거지 정도는 할 것이다. 하지만 혼자 산 기간이 오래될수록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집안일'이라는 이 짧은 단어 하나에 얼마나 다양한 것들이 녹아있는지. 더 나아가 수많은 집안일 중에서도 '선호하는 집안일'과 '유독 꺼려하는 집안일'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양한 집안일 중, 내가 유독 꺼려하는 집안일은 '바닥 닦기'이다. 청소기를 돌리는 건 그냥저냥 할 수 있다. 그런데 물걸레나 밀대로 바닥을 닦는 건 다르다. '바닥을 닦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청소기는 바닥을 슥슥 밀고 나서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놓으면 미션 완료지만, 바닥을 닦으려면 물걸레에 물을 적시고 빨아야 하는 업무가 추가된다. 심지어 제대로 빨지 않으면 다음에 바닥을 닦을 때 불쾌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바닥을 닦는 것과는 반대로 아무리 업무량이 많아도 괜찮은 집안일도 있다. 그게 바로 설거지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설거지하는 것에 대해 크게 귀찮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싱크대에 있는 그릇의 양이 많아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다 보면 어느새 식기 건조대에 수북이 그릇과 접시들이 쌓여 있었다. 주변에 튄 물기들까지 행주로 슥슥 닦은 후, 물기를 꼭 짠 뒤에 펼쳐서 말려두고 나면 개운한 기분이 들곤 한다.
내가 설거지라는 집안일에 거리낌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가장 확실한 계기는 '제사상 설거지'를 하고 나서였다.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음식들을 담은 그릇들을 설거지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싱크대 안이 각종 제기들과 그릇들로 가득 차고도, 그 옆에 쟁반을 두고 쌓아야 한다는 걸. 요즘은 제사를 간소화해서 지내다 보니 그릇이 많이 나오진 않지만 불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제사가 끝난 뒤의 주방은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라, '설거지와의 전쟁'이었다.
설거지 양도 양이지만,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건 따로 있다. 사실상 제사상 설거지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그릇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기름기 제거'라 할 수 있다. 종류별로 노릇노릇하게 부쳐진 전들은 먹을 땐 맛있지만, 식사가 끝나고 난 후 바라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설거지를 할 때도 기름기를 잘 씻어내지 않으면, 또다시 설거지를 해야만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제거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뜨거운 물로 그릇들을 여러 번 헹궈낸 후 주방세제로 설거지를 하는 걸 선호한다. 설거지가 끝난 그릇의 표면을 고무장갑으로 문질러보면 기름기가 잘 제거되었는지 알 수 있다. 부드럽게 밀리는 것이 아닌, 약간의 뻑뻑함이 느껴진다면 미션 성공인 것이다.
선호하는 집안일이라고 해서 항상 할 때마다 즐겁게 느껴지진 않는다. 집안일도 일이니까 번거롭고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집은 가만히 있으면 스스로 정돈되지 않고, 싱크대도 마음씨 좋은 요정이 밤새 다녀가지 않는다. 귀찮음을 줄이려면 결국 귀찮음을 한 번은 통과해야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진리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