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웃고, 울고, 화낼까

프롤로그

by Quat


똑같은 영상을 봐도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직 어린아이를 손찌검하는 부모의 영상을 본 두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며 슬픔을 느끼고, 다른 사람은 그 아이의 부모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회사에서 실수한 신입 사원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신입 사원에게 다가가 "괜찮아, 처음엔 그럴 수 있어."라고 다독이는 선임 A.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수습하는 선임에게 다가가 신입 사원이 사과하려고 하자 "일단 문제부터 처리하고 나서 나중에 얘기하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선임 B.



매 순간 다른 문제들과 그에 따른 반응, 대처방법으로 온/오프라인은 언제나 뜨겁다. 아마 오늘도 어떤 이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에 반해 어떤 이는 자신의 이름 앞에 달린 '무능한'이란 칭호를 지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왜 우리는 "사람마다 다르다"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다름이 드러날 때마다 상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욕하는 걸까.






우리는 타고나는 성향에 더해 후천적인 학습으로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간다. 거기엔 이유가 있는 것들도 있지만, 사실 논리적이라기보단 '나만의 이유'에 가깝다. 양식보다 한식이 몸에 더 좋다는 이유로 한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한식들이 맵고 짠 음식들 위주라면, 차라리 서양식 샐러드와 호밀빵을 먹는 사람이 더 건강할 것이다. '한 번 청소를 해도 완벽하게!'라는 슬로건을 가진 사람이 한 달에 한 번만 청소를 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덜 깨끗해도 매일 70% 정도의 위생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도 내 생각이 옳다고 믿고 살아가지만, 언제나 내 주관이 모든 상황에서 좋은 쪽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종종 오해를 받곤 한다. 상대가 좋게 봐줄 땐 "잘 들어준다"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왜 넌 의견이 없어?"란 말을 들을 때도 있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선호하는 방법과 상대가 선호하는 방법 중 무엇이 더 나을지, 제3의 방법은 없는 건지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니 받는 오해 중 하나다. 나에게 있어 '신중함'이, 누군가에겐 '답답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갖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유독 많아졌다는 것 또한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고 사는 건 정말,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아갈수록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심지어는 나의 자식들까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살면서 웃고, 울고, 화내는 것. 그건 가족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다르게 태어났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글들에선 우리가 일상 속에서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라고 한 번쯤은 생각했던, 어쩌면 나와 당신도 경험했을법한 일들에 대해 그 속사정을 자세히 풀어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