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프다는 건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

by Quat


삶이란 관계의 불규칙적인 종말과 시작의 연속이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이미 관계를 맺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과 친분을 쌓는다. 관계를 끊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합리적인 사람에겐 득보다 실이 많아서, 섬세한 사람에겐 받은 상처가 많아서, 강인한 사람에겐 상대의 유약함이 그 이유가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이유의 발생이 곧 관계의 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연인에게 사랑받는 게 중요해'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연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한두 번 들지 않는다고 헤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충족되지 않는 횟수가 쌓이고, 그로 인해 마음이 멀어지다 못해 더 이상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이는 순간이 있다. 실제로 헤어지진 않았지만 그 시점 이후부터 관계는 사실상 끝났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설령 관계 유지가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상대방과의 이별을 선택하진 않는다. 이별 후를 상상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판단 하에 빠르게 관계를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다루는 대부분의 책에서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와는 조금 다른 의견이다. 결국 후자의 선택을 하는 것엔 동의하지만, 살면서 전자의 선택을 한번 정도는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도 감정이 섞인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 순간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기도 한다. '브릿마리 여기 있다'라는 책을 보면 질이 좋지 않은 친구(별명이 사이코다)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는 소년이 등장한다. 어른들은 그에게 그 친구를 멀리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사이코를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 어린 두 동생을 보호해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은 결국 사이코가 엮인 사건으로부터 친구를 돕기 위해 나섰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행동하고 후회하는 것. 그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부터 다수가 깊은 감명을 받기도 하는 것. 기계와는 궤를 달리하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앞선 예시에 등장한 소년처럼 극단적이진 않아도 관계에서 오로지 합리적인 선택만을 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만 손해 볼 순 없지'를 대인관계의 제1원칙으로 삼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나만 손해 보는 일방적인 관계의 지속이 좋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정말로 자신만 손해 보고 있는 것인지,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고서 나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끊어버리는 건 전혀 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이후부터 사람들이 전보다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성향으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존감의 의미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전에서 말하는 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존감을 일종의 '자기 방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사태에 대해 누군가 지적했을 때, '내가 실수했으니까 저 사람이 내게 저렇게 말하는구나'가 아니라 '네가 뭔데 나에 대해 지적질이야'라고 받아들여버리는 것이다. 왜 저 사람이 내게 그런 말을 하는지보다 내가 느끼는 기분 나쁜 감정에만 오롯이 집중하며 '저 사람은 내 자존감을 낮추는 사람'이라고 취급하고 관계를 끊어버리고 만다. 이런 면에서 자존감이란 단어는 꽤나 만능이다.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든지 간에 "난 그저 내 자존감을 지킨 것뿐이야!"라는 한 마디면,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을 납득시키기 수월하다.






자신만이 상대에게 희생하고 봉사하며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자기 착각이다. 상대적인 차이는 발생하겠지만 타인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이후부터 '서로 간의 주고받음'은 시작된다. 상대가 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혹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주는 것에만 집중하면, 모든 관계에서 내가 '항상 손해만 보는 사람'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종종 그러한 자기 연민 속에서 스스로를 고귀한 사람이란 착각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을 '주는 존재'라 생각한다. 스스로는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은 상대를 '주는 것 없이 뺏기만 하는 존재'로 낙인을 찍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무언가를 뺏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곁엔 그들의 고귀함을 추켜세워주며 그들이 주는 것을 받아먹기만 하는 존재들로만 가득 차곤 했다.



무언가를 할 줄 알면서 하지 않는 것과, 한 번도 하지 못한 건 다르다. 관계도 그렇다. 모순적이지만 상처를 받아본 사람만이 상대의 상처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관계를 유지해 본 사람만이 그러한 상대의 노력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떠나간 누군가를 미워하는 동시에 아프다는 건,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존감을 위해, 새로운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억지로 그 사람을 잊으려고 하기보단 있는 그대로 그 상황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고 멀어졌으며 끝내 이별까지 하게 되었는지를 사유해 보는 것. 나는 그 사유가 전보다 더 성숙해지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전 01화무엇 때문에 웃고, 울고, 화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