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 않은 포기를 위해
우리 사회는 '포기'라는 단어에 극도로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 반면 '의지'라는 단어엔 무한한 긍정을 부여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우리가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참아내고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가진 채 버티면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꼭 그렇진 않다. 사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포기를 유독 각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지만, 개인적으론 포기도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담이 아니라 무언가를 위해 오랜 시간을 바쳤지만 그것이 별 소득이 없음을 받아들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몇 년 동안 만난 연인과 단 하루 만에 남이 될 수 있는가? 어릴 때부터 해온 음악이나 그림, 운동을 그만두고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는가? 대부분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일말의 기대를 내려놓지 못한다. 하루만 더, 일주일만, 한 달 정도는 괜찮아.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시간들은 포기하려는 마음을 먹을 때마다 발목을 붙잡으며 간절하게 외친다. "이제 다 왔어!" 그 외침에 넘어가 포기하려는 마음을 또다시 포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멈추는 게 맞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버티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기하는 것도 자꾸 하면 버릇이 된다. 왜 이렇게 확신하냐면 이 글을 쓰는 내가 포기하는 게 습관이 된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전에 비해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내게 '버틴다'는 말은 본능적으로 불편하게 들린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견뎌야 하는 불편함과 수고로움, 그렇다고 해서 버틴 것에 대해 확실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어떤 걸 하더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버티는 시간'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인간관계든 일이든 점점 더 잘하기 위해선 항상 자신에게 불편함을 주는 그 시점을 억지로 참고 버티며 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 남들도 다 하는 그 정도까지밖에 할 수 없고, 그러면 굳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어도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어딜 가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을 자처하는 꼴이다.
우리가 적절한 포기와 의지력을 갖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나의 한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즉 나의 임계점을 내가 알고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의지력을 0에서 10까지 점수로 매긴다고 가정했을 때 친한 친구 A의 의지력은 7인 반면, 당신의 의지력은 4 정도 된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친구의 의지력을 보며 자신의 의지박약을 탓한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그의 의지력을 보며 당신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쟤도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해!" 여기까지도 괜찮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포기하지 못해 힘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노력해서 의지력을 6까지 끌어올렸어도 '증가한 의지력 2'보다 '친구의 의지력보다 부족한 1'에 초점을 맞춘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의지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강한 믿음을 가진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지나치게 고평가 하는 동시에, 메타인지의 상실이라 할 수 있다. 강한 의지만 있다면 매주 주말 아침 10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7시에 일어나 러닝을 하고 자격증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한 두 번이야 가능하겠지만 의지만으로 그것을 꾸준히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점진적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하기보다, '의지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니까?'라는 식이다.
의지만으로 모든 걸 다 이뤄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의지만으로 다 할 수 없다는 허무주의적인 사고에 빠지는 것도 위험하다. 중요한 건 그것을 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가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타고나길 발목이 약한데 남들처럼 러닝을 하면 당연히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상황을 '내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뛰면 어떻게 될까. 당장은 성과가 나오겠지만 그 이후는 안 봐도 뻔하다. 최악의 경우 몇 달 동안 러닝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지나친 건 부족한 것만 못하다. 마음이 앞서면 몸이 다치고, 몸이 앞서면 마음이 다치기 쉬워진다. 나의 한계를 내가 안다는 건 그런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여야 내 기준에서의 최선을 다할 수 있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아쉬움 없이 포기할 수 있다. 일상에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잦아진다면 더욱 빨리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잠깐 멈춰 설 필요가 있다. 더 멀리, 보다 안전하게 가기 위해선 뒤를 돌아보며 걷는 것보다 앞을 보며 걷는 게 나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