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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19. 2022

'원래' 그렇다는 건, '원래' 없어


연인과 다투던 중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나오는 말이 있다. "난 원래 그래!" '원래'라는 말은 짧지만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신이 그런 모습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과, 그걸 바꾸고 싶지 않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난처해진다. 인정하면 앞으로는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게 곤란해지고, 인정하지 않으면 마치 상대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잔인하다. 자신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겐 의무를 떠넘기는 말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내가 이런 모습이 별로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는데 고치긴 힘들어. 그렇지만 네가 날 사랑한다면 이런 모습까지 이해해'라는 느낌이다.



유독 이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처음 만날 땐 당당하고 표현하거나 행동함에 있어서 거침이 없다. 솔직하며 꾸밈없는 그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과 점점 더 친분이 쌓일수록 왠지 모를 불편함이 하나둘씩 생겨나곤 한다. 매번 약속 시간에 조금씩 늦는 그들에게 왜 자꾸 늦게 오냐고 한 마디를 하면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나 원래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똑같은 말이라도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그들에게 꼭 말을 그렇게 해야 하냐고 하면 그들은 말한다. "내가 원래 거짓말을 못해~" 그들은 어떤 관계,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행동을 옳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예전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었는데'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힘든 시기가 닥칠 때 우리는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긍정적이었던 사람이 한없이 부정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자주 웃던 사람의 얼굴이 피골이 상접한 듯 퀭한 얼굴로 변하기도 한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더라도 계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좋은 쪽으로든, 그렇지 않은 쪽으로든 말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그동안 경찰들이 처리하지 못했던 고담 시의 수많은 악당들을 감옥으로 보내 '고담의 백기사'로 칭송받던 변호사 '하비 덴트'조차, 사랑하는 연인인 '레이첼'을 조커에게 잃은 뒤 비뚤어진 신념을 갖고 '투 페이스'라는 빌런으로 바뀌게 된다. 이런 사례가 영화뿐이겠는가. 영화 '타짜'의 실존인물로 잘 알려진 장병윤 씨는 잘못된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아예 손을 씻고, 사기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책을 출간했다. 이처럼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을 갖고 살아간다.






어쩌면 '원래 그래'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들도 예전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른다. 누구보다 착하고 선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말에 경청하고,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모종의 사건을 겪으며 매우 힘든 시기를 거쳐 살아왔던 삶과 반대로 살기를 결심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누구보다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엄청난 배신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더 이상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기로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누구보다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겉으로는 까칠하게 행동하는 건 나 또한 많이 봐왔다. 그들이 받은 상처는 분명 쉽게 치유되기 힘든, 커다란 상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그들이 타인에게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그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제삼자가 피해받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전 연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다음 연인을 구속하고 집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알면서도 고치기 힘든 버릇이나 습관은 당신과 나,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이 싫어하는 버릇을 고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력을 했지만 고치지 못한 채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나는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는 뻔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 또한 몇십 년째 노력했음에도 고치지 못한 습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습관을 고치는 걸 포기하진 않았다. 고칠 수 없는 습관이라며 나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순간, 그 누구도 그 습관을 바꿀 수 없으니까.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은, 단지 자신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라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의 모습 중 싫어하는 모습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있다. 처음엔 그런 모습들까지 나니까 사랑하고 인정하려고 해 보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싫어한다는 건 본능이니까. 그래서 고치려고 노력해보았다.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싫은 모습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좋아해 보기도 했고, 고치려고 노력했음에도 남아있는 부분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인정한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싫어하는 모습들을 고칠 수 있다면 고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그래'라는 말은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사랑할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무언가에 푹 빠진 적이 있다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땐 바라는 것이 많아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상대가 바뀌지 않고 그대로라면, 사랑하는 마음은 점점 줄어든다. 마음이 식으면 그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든 말든,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사랑과 포기의 차이다. 당장은 불가능해보더라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려놓는 건 포기다.  



결국 원래 그렇다는 건, 원래부터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너무 힘들다면 잠시 내려놓을 수는 있다. 그러나 스스로 포기하면 영원히 그것은 그대로이다. 어쩌면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원래 그래'가 아니라 '원래라면 그렇지만 좀 더 신경 써볼게'라는 말을 더 많이 해주는 게,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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