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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27. 2022

3개월 동안 매일 글쓰기로 달라진 것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째가 되었다. 작년부터 꾸준히 블로그 운영을 해서 그런지, 매일 글을 쓴다는 게 아주 힘들진 않았지만 여전히 매일 글을 쓴다는 건 어렵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만사가 귀찮다. 자기 전까지 뒹굴거리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한다는 건 내게 아주 큰 의미다.  



퇴근 전엔 "집에 가자마자 글부터 써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집에 들어오는 순간 침대로 몸을 던지고 싶어 진다. 힘겹게 노트북으로 브런치 사이트에 접속한 뒤, 새하얀 글쓰기 화면을 띄워놓은 채로 몇 시간 동안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본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거의 매일 하루에 하나씩 짧지 않은 글을 쓰고 자는 걸 보면, 내가 정말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건, 스스로를 많이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살면서 겪은 여러 경험과, 거기서 느꼈던 감정 등을 풀어내면서 과거의 나를 현재 시점에서 재평가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과거에 느낀 분하고 억울하기만 했던 감정들이,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다. 반대로 마냥 좋고 즐거웠던 추억들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과 후회가 느껴지기도 했다.



똑같은 경험에서 과거와 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건, 그때와 달리 내 생각들이 많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놀러 간 바다를 다시 보러 갔을 때. 오래전 살던 동네를 방문했을 때. 특별한 추억이 있던 곳을 우연히 지나쳤을 때. 누군가는 별생각 없이 지나칠 수도, 또 다른 누군가는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가면 아픈 추억조차 그리움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살짝만 건드려도 미칠 듯이 아팠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에 부딪혀도 그저 그런 고통으로 느껴지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아프게 헤어져도, 또다시 다른 누군가를 만나 마치 처음처럼 열렬히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는 하지 않을 거라 맹세했던 일을, 돌고 돌아 다시 내 의지로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실수를 똑같이 하느냐, 하지 않느냐이다. 앞서 말했듯, 어떤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 그 당시보다는 무뎌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던 것들을, 어느 시점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을 보인다.



이것은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내가 예전에 한 번 경험해봤으니, 이번엔 더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경험이 쌓일수록 실력이 느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경험을 많이 해봤다고 해서, 무언가를 당연히 잘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표적으로 인간관계를 떠올려보자.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이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다. 처음 본 사람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친해지기 위해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화가 날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각자만의 생각을 갖고 있다.



경험과 실력이 비례한다고 가정했을 때, 친구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간관계를 능숙하게 잘할까? 친구가 적은 사람들에 비해 처음 본 사람과 좀 더 빨리 친해질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빨리 친해지는 것만으로 '인간관계를 잘한다'라고 말하긴 힘들다. 친구의 범위가 넓은 사람들은 사교성은 뛰어나지만, 개개인과의 친함의 깊이가 얕을 수 있다. 반대로 친구의 범위는 좁더라도 깊게 친해지는 걸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친구라는 개념의 차이, 그 사람과 친구가 될 때 서로의 상황, 한쪽이 힘들 때 상대방의 반응 등 수많은 변수들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 친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결국 친구를 더 많이 사귄 경험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관계를 잘한다'라는 결론과 연결되진 않는다. 연애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연애를 잘한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일을 오래 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일을 잘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친구는 많아도 속 얘기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거나, 연애경험은 많지만 연애를 할 때마다 매번 좋지 않은 이별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한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을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새로 입사한 신입도 할 수 있는 일이 전부인 사람도 있다. 무엇을 많이 하는 것과, 그것을 잘하는 건 어느 정도의 연관성은 있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3개월 동안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면서, 나는 스스로를 많이 되돌아볼 수 있었다. 후회 없이 잘했다고만 생각했던 일에서 후회하기도 했고, 왜 그것밖에 못했을까라고 자책했던 경험에서 정말 노력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나 자신조차 그때 몰랐던 것들을, 글을 쓰면서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경험으로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껏 거쳐온 숱한 나날들 속엔 나조차 몰랐던 내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글을 적다 보면 내가 과거에 저지른 바보 같은 행동들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 '내가 한 행동이니 나는 부끄럽지 않아'라고 해본들, 달라지는 것도 없고 아무도 그것에 관심 없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정신승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없다. 다만 부끄럽고 바보 같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부터, 앞으로 당신이 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한 걸 들은 적 있다. 찐따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찐따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부터라고.



가끔은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았지' 같은 쓸데없는 미화는 집어치우고, 지금 시점에서 과거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쭉 바라본 뒤에 인정할 건 솔직하게 인정하자. 그땐 바보 같았다는 것을. 멍청했다는 것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고 나면 아마 당신의 기분은 오묘할 것이다.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한결 홀가분해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진정한 '나'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시간이 흘러 과거의 자신에게 "그땐 정말 잘했네"라고 솔직하게 인정해줄 수 있는 날이 분명 생길 것이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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