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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01. 2022

착하게 살면 정말 복을 받을까?


우리는 살면서 여러 딜레마를 겪곤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착하게 사는 게 정말 맞을까?'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를 떠올려보면, 착한 심성을 가진 주인공은 처음엔 여러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자신이 베푼 행동들 덕분에 조력자들을 만나게 되고, 결국 마지막엔 행복하게 살게 된다. 반대로 심성이 고약한 인물들은 처음엔 잘 먹고 잘 살다가, 마지막 순간엔 가진 부를 모조리 잃고 쫓겨나는 등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권선징악'.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말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진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굳이 사례를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뉴스에 나올만한 큰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권선징악에 반하는 일들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아마 당신도 몇 번 겪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정말 착하게 산다는 게 맞는 걸까?" "오히려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 같은데..." 지금껏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몫을 양보했지만, 상대가 그것을 몰라주거나 당연하게 받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당신은 '착하게 산다는 것'의 딜레마에 빠져, 며칠 동안 고민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이 글은,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들을 위해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끄적거려본 것이다. 당신의 생각정리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결론부터 말하면, 착하게만 사는 건 그다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급발진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착하면 착할수록 지금 사회에선 '이용하기 딱 좋은 호구'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당신의 친구가 당신에게 지인을 소개해준다고 생각해보자. 지인이 어떤 사람이냐는 당신의 물음에, 친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걔? 진짜 착하지." 이 말을 들은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는 환한 미소, 밝은 인사성, 친절한 태도와 같은 이미지가 생각난다. '착하다'라는 단어가 주관적이긴 하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은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친절하다는 건 누구를 대하든 다정함이 배어있다는 것이다. 배려심이 많다는 건 그만큼 타인에게 양보를 잘한다는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사용하는 에너지의 방향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해 있다. 즉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착한 사람들이 가진, 가장 좋은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다.



인간은 무언가에 익숙해지면, 별생각 없이 그것을 대하게 된다. 당신은 숨을 쉴 때마다 고마움을 느끼는가? 폐활량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5분만 숨을 쉬지 못해도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숨을 쉰다. 매 순간 생명과 직결되는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을 떠올리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겠는가? 부모님의 사랑이 위대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반찬 투정을 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한 말을 잔소리로 치부하며, 놀기 바빠 연락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착한 사람들은 상대방을 받는 것에 익숙하게 만든다. 처음엔 상대방도 그들의 배려를 고맙게 생각하고, 그만큼 베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착한 사람들은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상대방의 배려를 거절하고, 그만큼의 배려를 또다시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려는 일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그렇게 상대방은 배려에 익숙해지고, 착한 사람들은 자신의 배려를 당연하게 받는 걸 보며 남몰래 속앓이를 한다. 준만큼 받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 착하게 살수록 자신의 인생을 더 어려워지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착한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야 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배려 또한 받는 연습도 필요하다. 만약 받는 것 없이 계속 주기만 한다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똑같은 이유로 상처받을 게 뻔하니까. 자신의 배려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 한다. 받은 만큼 주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난 걸 좋은 기회로 여기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받기만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배려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빠른 사람일수록 멀리 하는 게 당신의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결국 착하게 산다고 해서, 동화처럼 꼭 복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상처만 받고 사는 일이 허다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지금도 말하는 것일까? 나는 거기에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이다. 앞서 말했듯이 착한 사람들은 주는 것에 익숙하며, 그들의 배려를 받는 상대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의 관계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모든 것엔 반드시 예외가 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들의 배려를 여전히 고마워하고 감사해하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을 살면서 한 명이라도 만난다는 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누군가의 배려를 고마워할 줄 알고, 자신도 보답하려는 사람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선, 자신 또한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착하게 사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좋은 친구를 옆에 둘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불안감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이다. 옳지 못한 일로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은, 겉보기엔 떳떳하고 당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걷는 길이 잘못되었다는 건,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잘 알 수밖에 없다. 쉽게 번 돈이기에, 쉽게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 값비싼 명품으로 겉을 치장하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산다. 언제든지 자신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자신이 남들에게 저지른 잘못이 내일 당장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 착한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를 받을지언정 타인에게 상처를 주진 않는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에 돌아설 때도 그들은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관계에서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불안감에서 해방된 삶을 사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착하게 산다고 해서 꼭 복을 받진 않는다. 하지만 지난날에 대한 후회를 거의 하지 않으며, 정말로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좀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착하게 산다는 건 단순히 착한 일을 한다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타인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평소뿐만 아니라 자신이 힘들 때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내 기준에서 '착한 사람'이다. 항상 예민한 성격 탓에 믿을만한 친구도 없는 데다, 직장에서도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매달 기부를 한다고 해서 착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기부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자신이 평소에 저지르는 잘못을 덮어쓰기 위한 일종의 '면죄부' 형식으로 이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다.



"부자인 척하지 말고, 진짜 부자가 돼라"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착한 사람인 척하지 말고, "진짜" 착한 사람이 돼라. 앞서 말했듯 꼭 복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어쩌면 당신이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처럼, 당신 또한 동화 속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왜냐고? 인생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베푼 배려가 당연시되어 슬퍼하고 있을 당신에게 위로를 보내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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