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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29. 2022

더우면 더웠지, 습한 건 딱 질색이야


덥고 습한 날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비 오는 날보다 움직이기엔 수월하지만, 차라리 이럴 바엔 비가 확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많은 비가 내리는 날, 신발이 젖을 각오를 단단히 한 채 걸어본 적 있는가? 맑은 날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쓰고 있는 우산에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소리,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거리, 비 오는 날에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공기 냄새. 그러다 걷는 게 지루해지면, 근처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갈 때도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멍하게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며 쉬는 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시간이다.






비가 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와 친한 동생 중 한 명은 약속이 잡혀있어도, 비가 오면 '우천 시 취소'라며 다음으로 약속을 미루기도 한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씨도, 눈이 오는 날도 마찬가지다. 가지고 있는 특징이 명확할수록,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은 극명하게 갈린다.



그렇다면 요즘 같은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까? 비가 올 것 같지만 오지 않는, 습도만 잔뜩 올라간 어정쩡한 날씨. 우산을 챙기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챙기지 않으면 왠지 불안한 날씨. 하루 정도야 그렇다 치더라도 며칠 동안 이러면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에도 요즘 날씨 같은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땐 "난 아무거나 다 좋아"라고 말해놓고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면 "음... 그건 좀 별로지 않아?"라는 말을 툭 던지는 사람. 내 일엔 "살다 보면 그런 일 겪을 수도 있지"라며 대인배처럼 말하다가, 자신이 겪은 일엔 "나한텐 그런 말을 했다니까? 나 참, 어이가 없어서"라며 분이 풀릴 때까지 얘기를 하고 또 하는 사람. 이들은 마치 비 오기 전 습한 날씨 같다.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다. 우산을 챙길까, 말까. 얘를 만날까, 말까. 얘(요즘 날씨)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항상 착한 사람은 없다. 항상 나쁜 사람도 없다. 지난번에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타인이 나를 볼 때의 이미지는 꽤 차이가 클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미로 행동한 것일지라도, 받는 사람에게 그 행동이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의 생각이 올바르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내가 올바르게 행동했더라도 상대가 비뚤어져 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경험들을 몇 번 겪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점차 알아가게 된다. 자신이 어떤 말을 들을 때 행복하고 기분 나빠하는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기분이 나쁠 때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는 게 더 편한지 등을 하나씩 체득한다. 자신에 대해 알아갈수록, 스스로에게 부족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더욱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에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처럼 되기를 소망한다.



당신도 알겠지만, 사람이 타고난 성향은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 갖은 방법을 사용해도 조금은 나아질지언정, 뿌리째 바뀌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한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바로 '가면'을 쓰는 것이다. 자신의 원래 모습이 아닌, 타인을 대할 때 숱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또 다른 '나'를 내보인다. 소심하지만 대범한 척을 하고, 내향적이지만 외향적인 척을 하며, 쿨하지 못한데 쿨한 척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격들은 누구나 하나 이상 가지고 있다. 일할 때와 평소 모습이 다른, 뭐 그런 거 말이다.


 




자신의 본래 모습과 다른 인격이 있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만들어진 인격을 원래 자신이라고 생각하거나, 본래 자신의 인격과 만들어진 인격의 차이가 아주 클 때 나타난다.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척을 하는 건 문제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이 지나치게 외향적인 척을 하거나, 마치 자신이 내향적이었던 적이 없던 것처럼 행동하는 건 조금 다르다. 자신도 내향적이면서 내향적인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을 하거나, 외향적인 사람들 무리에 끼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들 말이다.



자신을 속이는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본성이 드러나기 가장 쉬운 순간은, 자신이 평소보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이다. 힘들 때 인간은 가면을 벗어던진다.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생각해보라. 평소엔 자신이 마치 대인배인 것처럼 행동하다가, 힘든 순간 세상 지질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얼마나 없어 보이겠는가!






지질한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대인배인 척하는 게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지질하다는 걸 극도로 부정하고, 아예 반대 사람인 척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소심하면 좀 어떤가. 찌질 해 보이면 좀 어떤가. 자신이 소심하고 지질한 모습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콕 집어 끄집어내는 사람이 더 나쁜 것인데 말이다. 타고난 자신의 모습들을 부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에게 정말 별로인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없는 것처럼 부정하는 게 아니라 힘들어도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행동해야 한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조금 더 솔직하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자신의 밑바닥까지 전부 보여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스스로 별로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척'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이 나올 수는 있다. 그렇지만 나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착하지도, 못되지도 않은 어중간한 사람이 될 바엔 차라리 한쪽으로만 사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지도, 많이 오지도 않는 습한 날씨같이 모든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보다야 한쪽에만 미움받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부디 당신이 어디에서든, 누구를 만나든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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