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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02. 2022

모든 건 느닷없이 찾아온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짧은 출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깨끗하게 씻은 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푹 쉬던 중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거기다 며칠 전, 자주 가던 카페에서 받은 쿠폰의 도장을 모두 채운 기억도 떠올랐다. 주말 오후에 마시는 시원한 무료 커피라.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다. 습한 날씨가 살짝 맘에 걸리긴 했지만, 카페까진 멀지 않은 거리라 일단 가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습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 기분이었다. 짧은 옷을 입은 것과 상관없이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카페에 도착하기 위해 걷던 중 시야에 들어온 건물과 주차된 자동차들의 색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텁텁하고 불쾌한 바깥 날씨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청량한 하늘이 보였다.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가 붓에 흰 물감을 잔뜩 찍은 뒤에, 푸른색 캔버스 위에 아무렇게나 휘두른 것처럼 불규칙한 점 형태로 구름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점 형태의 구름 저 멀리엔 그나마 제대로 뭉쳐진 구름과 함께, 연한 오렌지색의 노을이 아름답게 하늘 한쪽을 물들이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에 더운 것도 잊고 잠시 걸음을 멈춘 뒤 사진을 찍었다.






멋진 노을을 뒤로한 채 다시 길을 걸었다. 건너야 할 짧은 길이의 횡단보도 하나가 마침 초록불로 바뀌는 게 보였다. 운이 좋았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 카페가 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안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익숙한 가게들이 보였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드디어 카페가 보인다. 덥고 습한 날씨를 견디며 나를 걷게 만든 이유가 바로 코앞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카페에서 나오는 불빛이 보여야 하는데, 빛이라곤 전혀 보이질 않았다. "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침과 동시에, 나는 카페가 제대로 보이는 위치까지 도착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 꺼진 조명이 빠르게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번에도 주말에 와서 커피를 샀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카페 앞까지 걸어가 보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평일과 달리 주말은 영업시간이 짧았던 것이었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땐, 내가 일찍 왔었기 때문에 커피를 사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허탈한 기분을 느끼며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니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편의점에서 산 커피도 처음 마셔보는 것치곤 꽤 괜찮았다. 지금도 그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만약 카페로 출발하기 전에 영업시간을 찾아봤다면, 나는 굳이 밖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시원한 집에서 좀 더 여유롭게 휴식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밖에 나가지 않았다면, 아까 보았던 노을 지는 하늘을 보는 일도, 새로운 커피를 마실 일도 없었을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좋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들이 들곤 한다.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렇다. 분명 당신이 겪은 경험들은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만한 일들이다.



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건, 그것이 이미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겪고 싶었든, 겪고 싶지 않든 간에 당신의 삶에 벌어진 일이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부정하고 믿지 않으려 해도, 스스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현실이다. 당신이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해보자. 흘린 아이스크림을 치우고, 바닥을 깨끗이 닦았더라도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걸 알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분명 알고 있다.



이미 벌어진, 좋지 않은 일을 부정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늘 내가 겪은 일도 그렇다. 커피를 사기 위해 나왔지만, 원하던 커피를 사지 못했다. 단지 그뿐이다. 사실이란 건 단순하고 명확하다.






사실만 놓고 보면, 나는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 지금 기분은 썩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쪽'에 더 가깝다. 왜 그럴까?



또 다른 사실이 있었다.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멋진 노을을 보았다는 것. 원하던 것을 갖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름다운 하늘을 보았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편의점에서 산 커피가 꽤 내 취향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애초에 집에서 나설 때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즐거움 또한 존재했다.



모든 것은 느닷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말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실을 부정하면 할수록, 힘들어지는 건 자신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서 힘든 것도, 직장에서 상사와의 마찰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친구와 다퉈서 짜증 나는 것도 사실이다. 힘든데 왜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당신의 감정을 애써 부정하려 하지 마라. 힘들만하니까 힘든 것이다. 물론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에 취해, 자꾸만 좋지 않은 상상을 하는 것은 피해야만 한다. 당신에게 닥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라. 내가 그만큼 힘들어할 일인가? 그렇게 된 것에 내 잘못은 없는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힘들어할 만한 일은 억지로 부정하려 하지 마라. 그대로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충분히 힘들어해도 괜찮다. 다만 그러한 경험을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치부하려 하지 마라. 똑같은 경험을 여러 번 했음에도 매번 힘들어한다는 건, 당신이 이전 경험에서 아무것도 느낀 게 없다는 말과 같다. 매번 당신에게만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에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좋지 않은 일과 좋은 일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원하던 커피를 마시진 못했어도, 덕분에 멋진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거지 같던 하루여도, 자기 전 잠시라도 미소 지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 당신의 하루가 어땠든 간에 잠들기 전까지 한 번이라도 미소 짓는 일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만 글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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