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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03. 2022

항상 처음은 어렵다. 다음은 전보다 쉽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면서 장 선택하기 어려웠던 결정은 무엇인가? 오늘 글에선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결정과, 결정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오랜만에 약속 없는 평화로운 주말. 일찍 눈은 떴지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침대에 누운 채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최근 꽂혀 있는 여행 유튜버의 영상을 쭉 몰아서 보던 중, 흥미로운 제목의 영상이 보였다. 바로 유튜버 자신이 다녔던 대학교에 졸업 후 강연을 하러 간 영상이었다.



영상 속엔 유튜버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고등학교를 자퇴했으며,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교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들을 덧붙였다. "자퇴라는 결정을 하기까지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런 결정을 한번 하고 나니까, 다음에 어떤 결정을 하든 굉장히 빨리 하게 되더라고요." "딴짓을 많이 해야 해요. 그래야 하고 싶은 게 많이 생겨요." "본인을 믿고 좀 더 자율적으로 결정했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낸 후 대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대학교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욱 많다. 공부를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도,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결정을 내리는 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나와 비슷한 연령대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게, 마치 내가 그들보다 부족하고 결함이 많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이름만 대면 알법한 유명 대기업에서도 이젠 대학교 공채를 뽑지 않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다면 어디에서든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는 중이다. 전문직이 되면 마냥 돈을 많이 번다는 것도 이젠 옛 말이다. '직종'이나 '연차'가 아닌, 개인이 가진 '능력' 그 자체가 더 우대받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변하고 있는 사회에 비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속도는 항상 느린 편이다. 현재 자신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 진짜라고 믿고 싶어 한다. 정말로 '진실'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배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한다. 배에 탄 사람들 모두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배는 한 방향으로만 이동해왔기 때문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암묵적인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어느 날 배에 탄 어린아이 하나가 배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고 초록빛의 드넓은 평야가 있는 육지를 발견했다. 아이는 옆에 있던 어른에게 물었다. "저기 정말 예쁘지 않나요?" 어른이 대답했다. "응, 그렇네." "그런데 왜 아무도 저곳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아이의 질문에 어른은 말했다. "아직 아무도 간 사람이 없으니까." 아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제가 저기 가보면 안 돼요?" 그러자 어른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넌 저기까지 가기엔 너무 어려. 게다가 저기에 갔다가 무서운 동물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아이는 당돌하게 대답했다. "한 번 정도는 가볼 수 있잖아요! 게다가 저렇게 아름다운걸요. 여기에서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게 다들 지겹지 않나요?"



아이의 말을 들은 어른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아름답긴 하지. 그렇지만 적어도 여기에선 무서운 동물을 만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정 가고 싶다면 한 번 가보렴."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뒤를 돌아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밤, 아이는 밤새도록 고민했다. 혼자서라도 뭍으로 갈지 말 지를. 하지만 어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무서운 동물이 있으면 어쩌지? 어쩌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 내리는 걸 숨어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다음날 배는 전날과 같이 어디론가 움직였다. 때때로 난간에 기대 육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배에 탄 인원은 항상 그대로였다.






우리는 때로 쉽게 결정하기 힘든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자기 자신에게 강요받곤 한다. 할지 말 지, 만날 지 말 지, 헤어질지 말 지, 갈지 말 지 등등 말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뉜다. 당장 힘들더라도 나중을 위해 지금의 고난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당장 자신이 겪을 힘듦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일단 선택을 미루는 사람도 있다.



상황에 따라 누구든 전자를 선택하기도 하고, 후자를 선택할 때도 있다. 문제는 현재의 고난을 견딜 자신이 없어 자꾸만 결정을 미루는 게 습관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습관은 언뜻 보기엔 별 문제없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게 만든다. 매사 애매한 태도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해가 될 것 같으면 아예 발을 빼버리는 모습들은, 누가 봐도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다.



힘들다는 건 주관적인 것이다. 누군가에겐 매우 힘든 일이, 다른 사람에겐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누가 들어도 '정말 힘들다'라고 느낄만한 결정을 한 번 이상 해보고, 그 시간을 잘 견뎌낸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시간을 한 번 겪은 사람들은 삶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가 사뭇 다르다. 정말로 힘들어 본 사람은 타인의 힘듦을 절대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공감과 현실적인 조언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런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웬만한 일로 멘털이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어떤 상황에서든 통제하려 하고, 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이 가진 큰 강점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흔들릴 정도로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사람은 전보다 성숙한 태도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좀 더 사람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은 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이것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힘든 결정을 내린 사람만이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타인에 의해 힘든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더 생겨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산다는 건 중요하다.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을 질 줄 알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남 탓을 하거나 자리에 없는 사람의 험담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되도록 멀리 하는 게 당신의 신상에 이롭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봐야 한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은 언제나 힘든 법이다. 하지만 한 번 해봤다면, 두 번은 의외로 쉽다. 세 번은 더욱 쉽다. 물론 그것을 잘하는 것은 별개지만, 뭐든 하다 보면 실력은 늘게 된다. 가장 어려운 것은 하지 않은 것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것들을 하나씩 하다 보면, 분명 당신이 잘하는 것을 찾게 될 것이다. 꼭 한 길만 고집해서 걸을 필요는 없다. 남들이 걷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할 이유도 없다. 당신이 가장 잘 걸을 수 있고,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골라 걸으면 된다. 그뿐이다. 선택하기 힘든 갈림길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당신을 응원한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당신이 걷는 길이지 않은가. 심심한 응원의 말을 전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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