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사람이 ‘인생은 기세다’라는 말에 기대게 된 이유.
〈나는 꼭 잔잔해야 할까〉
〈내가 붙들고 있던 기준〉
나는 늘 잔잔함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 과하지 않은 말과 행동,
조용하지만 중심이 있는 사람.
그런 모습이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나였고,
그래야 내 내면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잔잔함은
내가 자연스럽게 머무는 상태가 아니라
유지해야 하는 태도가 되어 있었다.
흔들리면 안 될 것 같았고,
기세를 내면 나답지 않은 것 같았고,
감정이 올라오는 날엔 스스로를 제지하게 됐다.
잔잔함이 나를 보호하기보다는,
나를 관리하게 만드는 기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무 살 중반의 질문〉
그 무렵, 나는 자주 이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 삶의 방향성은 뭘까.
스무 살 중반쯤이면,
적어도 내 단점이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보완할지는 알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기세다〉
그러던 중 요즘 자주 보이던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은 기세다.’
솔직히 처음엔 나와 전혀 맞지 않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생각이 많고, 조심스럽고,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해야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미 알고 있던 태도〉
그런데 문득, 이 말이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몇 번이나 해봤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가 그렇다.
고중량을 다루기 전, 나는 항상 스스로를 거의 세뇌하다시피 한다.
“무조건 한다. 이거 가볍다. 진짜 다 뒤졌다.”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들어가면 몸이 확실히 달라진다.
학교에서 수업 실연을 할 때도 그랬다.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냥 하자. 내가 짱이다. 최고다.”
이런 생각으로 들어갔을 때,
결과는 늘 예상보다 좋았다.
그때서야 연결됐다.
이게 내가 책에서 봤던 자기충족적 예언이구나.
사람은 자기가 믿는 해석을 따라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다시 그 믿음을 사실처럼 만들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태도가 최근 내가 고민하던 ‘단점 보완’이라는 말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단점을 보완한다는 걸
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런 기세 있는 태도는
아예 내 모습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그려왔던 이상적인 모습은
언제나 잔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 내면의 중심도 잔잔할 거라고 믿었다.
〈태도는 하나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두 가지는 꼭 반대일 필요가 없었다.
사실 우리는
매번 기세를 가지고 살 수도 없고,
매번 잔잔한 모습으로 살 수도 없다.
하루를 살아보면 알게 된다.
사람의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 동안
서로 다른 색의 안경을 몇 번이나 갈아 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매번 기세를 내려고 하면
그것대로 지칠 것이고,
매번 잔잔하려고 애쓰면
그 역시 또 다른 피로가 된다.
〈맞다기보다는, 좋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생각이 많은 나에게
‘인생은 기세다’라는 마음가짐은
내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하나의 태도가 될 수 있다고.
이걸 발견했다는 사실이
나는 솔직히 꽤 기뻤다.
내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이
꼭 나를 부정하는 방향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다만, 이 마음가짐을
항상 맞는 태도라고는 두지 않으려고 한다.
삶의 태도는 맞고 틀리고로 재단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두고 싶다.
이 마음가짐은 ‘맞다’기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좋다’.
그 정도의 거리감이면,
지금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