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잔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관계에 과하게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예전에는 그 잔잔함이 타고난 성격이거나, 멘탈이 강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잔잔함은 성격이 아니라, 기준의 위치라는 걸.
기준이 밖에 있을 때의 나는 늘 바빴다.
누군가의 반응을 읽고, 표정을 해석하고, 말에 의미를 붙였다.
상대가 따뜻하면 마음이 올라가고,
상대가 무심하면 마음이 내려갔다.
그날의 자존감은 내 것이 아니라,
상대의 태도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는 그래프 같았다.
그래서 늘 마음에 파도가 있었다.
아무 일도 없어도, 누군가의 반응 하나로 하루의 감정이 뒤집히곤 했다.
기준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용해졌다.
상대가 무심해도
‘저 사람 오늘 컨디션이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고,
상대가 따뜻해도
‘고맙다’ 하고 끝났다.
더 이상 누군가의 태도가
나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그때 알게 되었다.
잔잔함은 아무 일도 없어서 생기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려야 할 이유가 사라져서 생기는 상태라는 걸.
기준이 밖에 있을 때는 ‘부분의 나’가 곧 ‘전체의 나’였다.
오늘 말실수를 하면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가 되었고,
상대의 반응이 애매하면 ‘내가 별로였나’가 되었다.
항상 한 장면이 나 전체를 평가했다.
하지만 기준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나를 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오늘의 실수는 ‘전체의 나’ 중 한 장면일 뿐이 되었고,
상대의 반응은 ‘내가 아닌, 상대의 상태’로 분리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보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의 주소가 자기 안에 고정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과 태도를 읽되,
거기에 자기 존재를 걸지 않는다.
이 차이가 사람을 잔잔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홀로 선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제대로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에게 건강하게 기댈 수 있고,
누군가를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
‘나는 나 혼자로도 괜찮다’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존이 ‘나를 채워줘’가 아니라 ‘함께 있으면 더 좋다’가 되고,
사랑이 ‘나를 확인해줘’가 아니라 ‘너를 그대로 보고 싶다’가 된다.
여기까지 오면서 또 하나 깨닫게 된 게 있다.
인성과 성숙은 타고나는 기질일 수도 있겠지만,
오래 유지되는 것은 결국 노력이라는 걸.
하루하루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기준은 금방 밖으로 나가고,
자존감은 금방 흔들리고,
관계는 금방 버거워진다.
마음을 알아차리고, 물러서고, 정리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
이 반복이 사람의 인성을 만들고 유지하게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인성이 좋은 사람을 보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원래 성격이 저런가 보다’가 아니라,
‘저 사람, 마음을 오래 돌봐왔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많이 참고, 많이 정리하고, 많이 돌아왔겠구나 싶은
조용한 존중이 생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잔잔한 사람이 되고 싶다기보다,
기준을 내 안에 두고 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려도 돌아올 위치를 아는 사람으로.
그리고 매일,
내 마음을 한 번쯤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