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의 마지막 기록.
인스타에서 이런 문장을 봤다.
“독립적인 사람은 연애를 못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극단으로 놓고 본다면,
극단적으로 독립적인 사람이 오히려 연애를 더 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독립적인 사람은 기준이 내부에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불편한지,
어디까지가 나의 선인지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아무 관계나 시작하지 않을 뿐이다.
반대로 기준이 외부에 과하게 놓여 있다면
관계의 중심은 늘 상대에게 있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감정이 오르내리고,
상대의 말 한마디에 자존감이 출렁인다.
그 상태에서의 연애는
사랑이라기보다 불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독립은 연애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연애의 전제 조건일지도 모른다고.
(물론 지금은, 의존과 독립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고 생각함. 의존해야 보다 건강한 독립에 더 가까워질 수 있고, 그렇게 독립해야 더 건강하게 의존할 수 있는.)[물론, 나에게만 해당하는 사실일 수 있다는 것.]
나는 한때 인생의 대부분을
기준이 외부에 놓인 채로 살아왔다고 느낀다.
유년기부터 그랬던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 분위기를 빠르게 읽었다.
어떻게 해야 미움받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지
자연스럽게 계산하던 아이였다.
그 덕분에 착하다 또는 배려심 있다는 말을 빈번히 듣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기준이 외부에 있는 삶이 완전히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감각 덕분에 나는 사람을 읽을 수 있었고,
관계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기준이 늘 밖에 있으면
내 감정의 리모컨도 밖에 있게 된다는 것.
상대의 반응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바뀌고,
누군가의 말투 하나에 자존감이 흔들리는 상태.
그건 생각보다 많이 소모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독립과 의존의 순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디폴트가 독립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립이 선행되어야
의존이 선택이 된다.
“너 없으면 못 살아”가 아니라
“나는 나로 충분히 서 있고, 그래도 너를 선택한다.”
이 차이는 크다.
독립이 없는 의존은 불안에 가깝고,
독립 위의 의존은 사랑에 가깝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는 기준이 외부로 쉽게 나가는 사람이다.
이걸 인정하니 퍼즐이 조금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관계 안에서 잠시 밖으로 나간 기준을
다시 안으로 돌려놓는 시간.
편입을 준비하던 우울한 시절,
편의점에서 신상 빵을 하나 사 먹는 일이 그렇게 좋았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그때는 단순한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건 나의 무의식적인 복구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이게 먹고 싶어.”
“내가 선택했어.”
그 순간만큼은
기준이 완전히 안에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기.
사소하더라도 스스로 결정하기.
누구의 평가도 없는 시간을 보내기.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
밖으로 향하던 기준을
조금 더 수월하게 안으로 돌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가끔 출렁인다.
관계 안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고 있을 때,
상대의 반응이 애매할 때.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지금의 나는
출렁임을 알아차릴 수 있고,
잠시 멈추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다.
파도가 없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파도가 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 생각이 모두에게 적용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건 나에게만 맞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 막 이 생각에 닿았을 뿐이다.
이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기준은 밖으로 나가고,
가끔은 감정에 잠식되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다만 적어도 지금, 내가 생각한 '나'는
나는 기준이 쉽게 외부로 나가는 사람이고,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기준을 안으로 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디폴트는 내부 기준, 독립)
내가 느끼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하는 삶.
타인의 반응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반응이 나의 중심이 되지는 않는 상태.
오늘, 아직 온전히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그 방향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글이 올라오는 과정... 을 생동감 있게? 말해보자면,,,
1. 생각 정리가 딱! 되고 와,,, 하는 느낌이 들 때, 브런치에 글을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하늘을 뚫음.
2. 그때 내 생각을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마음에 무지막지하게 적고, AI에게 넣음.
3. AI와의 많은 대화를 통해서 "음 얘가 지금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오 ㅋㅋ" 하는 판단이 서면
AI에게 "브런치용 에세이로 써주라"라고 함.
(대화? 하는 과정에서 생각에 대한 확장도 되는 듯.)
[AI랑 하는 게 대화가 맞나 싶지만 ㅋㅋ.....,,,,ㅇㅅㅇ]
4. 그다음, AI가 쓴 글을 보고 검토하며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이나 좀 찜찜한 느낌이 드는 부분은 바로바로 수정을 해달라고 몇 번이나 반복하여, 내가 봤을 때 찜찜한 느낌이 안 들면 올리기로 결정하는 듯.
++++
근데 오늘은 막무가내로 쓰고, 정리를 해볼까? 내가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올라왔었음.
그래서 다음 글을 작성할 땐, 내가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최근 들어 '기준의 위치'에도 정말 관심이 많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