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꼬리로 남기기로 한,
서글픈 자존심

여고 시절의 한 페이지

by 비채꿈

1980년대 초, 시골 중학교에서 연합고사에 합격해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한다는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날 채비를 마쳤다’라는 뜻으로 여겨졌다. 전교생 350여 명 가운데 단 16명의 여학생만이 그 문을 통과했다. 마을에 단 한 대 있던 전화로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아이는 그 당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경쟁자이던 동네 친구와 함께 서부 경남의 명문이라 불리던 여고에 이름을 올렸을 때까지만 해도, 앞날에는 활짝 꽃을 피울 미래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교문을 넘는 순간, 세상이 나누어 놓은 ‘다름’을 또렷하게 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점심시간의 도시락의 반찬 통이었다. 친구들이 싸 온 햄과 달걀옷을 입은 소시지였다. 아이의 도시락에는 늘 삭힌 김치와 콩나물무침, 물기 빠진 오이무침이 들어 있었다. 어떤 아이는 집에 가정부가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가난은 반찬 통에서 먼저 왔다. 책 모서리에 흘러내린 김칫국물의 자국처럼 자존심이 깎아내렸다.

공부의 격차는 반찬의 차이보다 더 깊었다. 시골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성적은 도시 아이들의 학원과 과외라는 벽 앞에서 힘을 잃었다. 새벽 별을 보며 집을 나서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이미 녹초가 되었다. 밤늦게 별을 보며 돌아오는 통학 길은 공부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학생의 명분을 잃지 않는 고행에 가까웠다. 동네 친구와 함께 얻은 누추한 자취방에 가끔 어머니가 새벽 장날에서 물건을 팔고 떠날 때 먹거리를 두고 간 마음이 아직도 선하다. 그 억척스러운 사랑에도 불구하고, 성적표에서 아이의 이름은 늘 뒤쪽을 맴돌았다. 공부도, 외모도, 사고도 없는 그저 인원수나 채우는 학생으로 남았다.


공부를 위해 노력도 했었다.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들이붓고 ‘잠 안 오는 약’까지 먹어가며 책상 앞에 앉았지만, 쏟아지는 졸음 앞에서 아이는 번번이 패했다.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차별은 반복되었다. 그때 아이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뱀의 머리가 되기보다는, 용의 꼬리가 되기 위해 왔다.

번듯한 실업계 학교에 갔다면 칭찬받으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비록 꼴찌에 가깝고 짓밟히는 자리일지라도, 이 높은 벽 안에서 끝까지 버티기로 했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방식의 자존심이라 생각했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꼬리였지만, 아이는 그 자리를 놓지 않았다.

지금도 불안한 일이 생기면 시험을 망치거나 커닝을 하다 들키는 꿈을 꾼다는 그녀. 그 시절의 서글픈 자존심은 사십여 년 흐른 지금도 마음 한편에 흉터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안다. 용의 꼬리를 붙잡고 버텼던 그 시간이, 훗날 어떤 풍랑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뼈대가 되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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