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즙에 섞인 어머니의 눈물

멈춤이 가르쳐준 사랑

by 비채꿈

등학교 2학년의 시간들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꿈많은 여고 시절의 여름은 찬란해야 마땅했지만, 그것은 통증의 계절로 남았다. 이유 없이 시작된 류마티스 관절염은 평범한 일상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무릎과 발등은 신발을 신을 수 없을 만큼 부어올랐고, 손마디마다 송곳 같은 통증이 박혔다. 무릎에서 물을 빼고 침을 맞으며 버텼지만, 한 달이 넘는 결석 끝에 아이는 결국 휴학을 택했다. 성적은 무너졌고, 마음을 두었던 동급생 남자친구와 거리는 더 멀어졌다. 아이는 2학년을 다시 다니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스스로를 달래는 희망 속으로 집안에 숨었다.


휴학 이후의 시간은 고립이었다. 다리를 높이 올리고 누워 지내는 동안, 약기운으로 몸은 퉁퉁 부어올랐다. 손가락으로 눌러도 살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 약의 부작용으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풍선이 뒤틀린 듯 울퉁불퉁 부풀어 올라 괴물 같았다. 아이는 곁을 지키는 어머니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다.


“그냥 죽고 싶다.”

“이래 살아서 뭐 하겠노.”


딸의 입에서 쏟아진 말들은 선인장 가시처럼 어머니의 가슴에 박혔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절망을 듣고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약간 꾸짖으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괜찮다 좀 있으면 씻은 듯이 낳게 해주마" 라면 긍정적인 말로써 달랬다

어머니는 딸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부기를 빼는데 좋다는 민간요법으로 밤마다 선인장을 찧어 밀가루와 반죽해 부어오른 다리에 붙였다. 아침이면 독이 올라 더 붉어진 다리를 보며,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영양이 부족해 낫지 않는다는 말에 단 백질이 풍부하다는 고양이 고기를 고아 오고, 뱀술을 구해왔다. 아이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발을 비웠다. 누워서 할수 있는 일은 라디오에서 듣었다. 힘들때는 부정적인 말들이 가장 먼저 찾아 온다. 그 당시 ‘여성시대’에서는 유서 쓰기를 했다. 사연을 들으며 유서를 적어도 보면서 죽음을 연습하던 아이 곁에서, 어머니는 지문이 닳도록 하루의 고단함으로 꾸벅꾸벅 졸면서 잠을 설치면서 딸의 다리를 주무르며 삶을 빌었다.


겨울이 끝날 무렵, 기적처럼 부기가 빠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약의 효능이라기보다, 딸의 절망을 온몸으로 받아낸 어머니의 시간과 할머니의 무한한 보살핌 덕분이었다. 복학한 학교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마음에 두었던 남자친구는 여전히 닿을 수 없는 별처럼 멀었다.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그의 집 번호를 누르고, 누나의 목소리에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아이는 조용히 가슴앓이를 했다.


그러나 병과 짝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좌절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처음으로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해 보이는 순간조차,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지켜내야 할 단 하나의 우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삶이 멈춘 그 방 안에서, 아이는 자신보다 더 간절히 자신을 붙잡고 있던 어머니의 등을 보았다.


예순을 넘긴 지금, 그녀는 돌아본다. 그 여름의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방향 전환이었다. 병은 아이의 시간을 잠시 멈추게 했지만, 그 멈춤은 사랑의 밀도를 보여주었다. 선인장 즙에 섞인 어머니의 눈물은, 딸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 가장 오래된 연료였다. 그녀는 이제 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달려 나아갈 때가 아니라, 멈춰 선 순간 자신을 놓지 않았던 손길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수요일 연재
이전 08화용의 꼬리로 남기기로 한, 서글픈 자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