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늦은 시간, 안양 학원가 사거리 근처에서 유난히 조용한 버스를 봤다.
전면 유리 너머로 운전석이 비어 있었다.
요금표에는 ‘무료’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고, 사람들은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조심스레 탑승했다.
이 버스는 바로 안양시가 시범운행 중인 자율주행 무료버스 ‘주야로(ZUYARO)’였다.
버스는 천천히, 하지만 흔들림 없이 출발했다.
운전기사가 없다는 낯선 풍경은 금세 안정감으로 바뀌었다.
조용한 전기모터의 소음만 들리는 안양의 밤, 그 안에서 나는 교통의 미래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안양시는 2024년 4월부터 시민을 대상으로 자율주행 무료버스 시범운행 사업을 시작했다.
도심의 교통혼잡을 줄이고, 교통약자와 시민 모두가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실험이다.
버스의 이름은 낮과 밤을 모두 달린다는 뜻의 ‘주야로(ZUYARO)’.
이름처럼 주간과 야간 노선이 구분되어 있다.
주간 노선: 범계역 ↔ 비산체육공원 (왕복 약 6.8km, 11개 정류장)
야간 노선: 인덕원역 ↔ 안양역 (왕복 약 14.4km)
주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야간은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운행한다.
심야 교통이 부족했던 시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고, 특히 대리기사나 늦은 귀가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요금은 무료다.
‘툭타(TTOKTA)’ 앱으로 탑승 예약을 하거나, 노선 내 정류장에서 자유롭게 탈 수 있다.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실험하는 의미에서도 상징적인 시도다.
버스 내부는 일반 버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운전석 대신 모니터와 제어 장치가 자리 잡고 있다.
차량에는 라이다(LiDAR), 레이더, 카메라, GPS 등이 탑재되어 있어 도로의 보행자와 차선을 360도로 인식한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신호등과 주변 차량을 분석하며 속도와 제동을 스스로 조절한다.
AI가 주행을 맡지만, 버스의 모든 상황은 안양시 스마트도시통합센터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된다.
버스의 위치, 속도, 주변 교통 상황이 즉시 관제 시스템에 전송되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기술은 이미 도시와 연결되어 있었다.
비록 자율주행이라 불리지만, 안양의 주야로 버스는 결코 완전 무인이 아니다.
차량에는 테스트 드라이버와 보조 드라이버가 항상 동승한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AI 주행 시스템의 반응과 판단을 모니터링하며,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수동 제어로 전환한다.
보조 드라이버는 승객의 안전, 문 개폐, 비상시 상황 판단을 담당한다.
자율주행은 단순히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감시와 인공지능의 계산이 함께 작동하는 협업 시스템이었다.
이중 안전 체계 덕분에 시범운행이지만 일반 버스보다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탑승한 시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운전자가 없으니 불안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정적이에요.”
“속도도 적당하고, 출발과 정지가 부드러워요.”
학원가 주변을 오가는 중·고등학생들은 밤늦게도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고,
심야 시간 대리기사들은 “이 버스로 복귀할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열린 이동 수단, 그것이 ‘무료 자율주행버스’의 진짜 의미다.
요금이 없다는 건 단순한 홍보가 아니라, ‘교통 접근성의 평등’을 실험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안양의 자율주행버스 실험은 단순한 교통 혁신을 넘어,
스마트 시티의 인프라가 ‘데이터’와 ‘사람’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가를 묻는 프로젝트다.
버스의 모든 주행 기록은 데이터로 수집되어,
앞으로의 교통정책, 도로 설계, 안전 규정에 반영된다.
기술은 시민의 일상 속에서 검증되고, 도시의 품질은 데이터를 통해 개선된다.
‘스마트시티’라는 단어가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주행 속도는 일반 버스보다 느리고, 돌발 상황에 대한 인공지능의 대응은 더 많은 테스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러한 무료 운행 모델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자체, 민간 기업의 협력 구조가 안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실험은 의미가 크다.
모든 혁신은 시행착오를 통해 진화한다.
시민이 직접 체험하고, 피드백을 주는 과정 자체가 기술을 사람에게 맞춰가는 과정이다.
완벽한 무인보다, 안전하고 신뢰받는 자율주행이 더 중요하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비산체육공원 인근에서 다시 만난 자율주행버스는
조용히 불빛을 켜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승객 몇 명이 차분히 자리를 잡자, 버스는 부드럽게 도시의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그 안에는 기술의 현재와 도시의 미래가 공존하고 있었다.
요금도, 운전석의 기사도 없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녹아 있었다.
테스트 드라이버, 보조 드라이버, 엔지니어, 그리고 자율주행을 믿고 탑승한 시민들까지.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여전히 사람이 중심이었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더 안전하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안양의 자율주행 무료버스 ‘주야로’는 단순히 미래 교통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교통의 미래는 속도보다 신뢰,
기술보다 사람,
그리고 돈보다 접근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메시지.
밤에도 달리는 공짜 버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기술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안양의 시민들이 이미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