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도시, 희망은 남아있나?

1기 신도시 공동주택 문제

잠만 잘 분 구합니다.


가도 가도 같은 길이었다. 분명히 지나온 것 같은데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서 부는 골바람이 머리통을 날릴 것만 같았다. 도로는 넓은데 사람이 없었다. 8차선이 넘는 대로에는 자동차만 다니고 있었다.

‘겨울철 파란 하늘은 추위의 상징이죠.’라는 기상캐스터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시베리아 기단에서 찬 공기가 내려오면 한국의 하늘이 파랗게 맑아진다는 말. 맑은 게 아니라 퍼렇게 얼어버린 것 같은 날이었다.

‘뭐 이런 동네가 다 있어.’ 간신히 버스정류장까지 닿았으나 추위에 아무 방어막 없이 얼굴에 쏟아지는 바람을 맞고 나니 지쳐버렸다. 나는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워 차에 타버렸다. 경기도 안양, 평촌에 처음 간 날이다.

image.png <사진 1> 1기 신도시의 흔한 풍경 (2024, 필자제공)

1988년 대통령후보의 공약으로 등장한 신도시건설 계획은 주택 200만 호 공급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89년, 부천 중동, 안양 평촌, 군포 산본 (당시에는 시흥군이었다)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는 신도시 발표 이후, 그 정도로는 성이 안 찼는지, 성남의 분당, 고양의 일산이 추가 발표되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다운 속도로 신도시 건설에 돌진해, 불과 3년 만에 성남시 분당구에 첫 입주가 시작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받치기 위해 1980년대 경기도는 ‘위성도시’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심지어 전쟁 시에 신도시의 아파트가 방어막이 된다는 고위관료의 발언이 알려지며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서울이 팽창하면서 도심지 곳곳에는 ‘잠만 잘 분’을 구하는 작은 방을 임대로 내놓는 집주인들이 생겨났다. 사람은 많고 주택은 부족하니 생겨난 현상이다. 지금도 수도권 곳곳에는 ‘잠만 잘 분’을 구하는 건물주들이 있다. 신도시는 이런 이유로 지어졌다. ‘잠만 잘 분 구합니다’.


아파트의 진격


한국의 첫 아파트는 일제강점기, 1938년 서울시 충정로에 지어졌다. 1960년대 말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된 이후 한강맨션아파트 등 반포, 여의도, 잠실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생겼다.

1970년대 건설붐이 일어나며 화장실과 주방시설을 실내에 갖춘 놀라운 주거형태가 바로 아파트라는 게 알려지며 아파트 붐이 시작되었다. 80년대 초반까지의 아파트는 주공, 시영, 시범 아파트 등 공공주택과 민간분양으로 나뉘어 있었다. 공공주택에는 공용화장실을 쓰는 형태도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의 아파트는 집단거주체제에 가까웠다. 그러나 외풍 없는 난방시설, 아궁이가 없는 부엌, 수세식 화장실만으로도 꿈같은 집이었다. 1981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아파트 입주자들은 일반도시근로자의 2배 정도 소득 수준이었고, 아파트가 불편하다고 떠나는 경우도 많아 평균 거주기간이 2.8년이었다는 통계도 있다. 아파트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자치의식도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3) 반상회의 정례화, 친선모임이 필요하다, 공동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4) 1981년 매일경제신문에서는 아파트경비원의 처우개선에 대한 논설이 실린다. 1982년부터는 아파트 주민자치에 대한 언론보도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1980년대에는 복잡한 관리체계와 전문적으로 아파트를 관리할 업체가 마땅치 않아 주민들이 스스로 관리조직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고, 아파트 안에서 단합대회를 위한 체육대회나 바자회를 열어 단합을 도모했다. 1982년 2) 동아일보에 따르면 아파트 거주자들 중 79%가 자치적 관리체계를 원했고 당시 위탁관리는 3.4%에 불과했다.

아파트에 살면서 삭막해진다, 건강에 해롭다, 주민 간의 정이 없다는 비판적 기사가 이어지다가, 1986년부터는 아파트의 미담기사가 쏟아진다. 아파트의 공유공간을 사용하는 문제, 친목을 다지는 이야기, 형편이 어려운 경비원을 위해 모금해 병원비를 지원했다는 기사들이 눈에 띈다.

1988년에 이르러서는 20년 넘은 노후아파트 재건축 기준이 마련된다. 이미 부동산 투기는 정점을 향해 가던 때였다. 이때부터 아파트주민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된다. 어차피 한국의 아파트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지어졌으니 초등학교 배정문제는 그렇다 치고, 중학교 배정문제, 장례식장, 공업시설 등의 혐오시설 기피문제, 소음과 먼지, 일조권에 대한 주장, 재산세와 관리비에 대한 불만, 지하철 연장 등에 대한 집단시위가 등장한다.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아파트 분양가 상한선이 철폐된 것도 1988년이다.

단독주택을 짓고 마당에 꽃을 심던 사람들도 집을 부숴버리고 연립주택등 소규모 공동주택을 지어 세입자를 들이기 시작했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집장사 열풍이 불었다. 대규모 건설사는 대형 아파트를 짓고, 지역의 ‘건축업자’들은 똑같이 생긴 집을 몇 채씩 지어 빠르게 팔아치우고 다음 필지를 향해 연장을 꾸려 떠났다.

image.png <사진 2> 아파트단지 자치선거 바람 (1988.2.4. 조선일보 /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기 신도시의 현재


1990년대부터는 아파트값이 부동산의 가격표가 되었다. 아파트만 은행에서 대출을 넉넉하게 해주는 탓에 아파트만이 공인된 주택자산으로 인정받았다. 여러 번의 다른 정부를 거치며 아파트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했다. 한때 떨어진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뒷걸음질 치지는 않았다. 1990년 분당의 아파트가격은 32평형 5800만 원가량이었다. 2024년 현재, 분당의 그 아파트는 17억 정도다.


1995년 매일경제는 ‘신도시 <서울 베드타운> 전락’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특화된 자족도시 계획은 백지화상태로, 교통과 교육시설이 열악해 주민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90년대 중반 1기 신도시 입주가 거의 다 마무리된 이후, 광역교통망 연결이 늦어지거나 도시기반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또한 건설당시의 부실공사, 쓰레기 문제, 미처 해결하지 못한 주변환경문제들도 산적했다.

생애 첫 집을 사서 정착한 신도시주민들은 이런 문제들을 가만히 두진 않았다. 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고 여겼던 시민운동의 불길이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과 자치운동으로 번져나가던 시점과 1기 신도시를 비롯한 공동주택, 즉 아파트 열풍과 맞물린다. 일단 한 지역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여론의 집중과 확산이 편리했다.

아파트에 거주하던 중산층 고학력 여성들은, 보다 나은 먹거리를 구하다 생협운동의 주체가 되었다. 안양지역의 경우 안양천 부근 아파트 거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한강지천 중 최악의 오염도로 악명 높았던 안양천 살리기 운동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80년대 서울의 아파트단지에서 형성된 반상회 문화, 이동문고, 주민도서관, 아파트 주민 화합대회가 신도시로 옮겨왔다. 반상회에서 만난 여성들은 부녀회를 꾸려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주민자치를 실천했고, 저렴한 직거래장터를 직접 운영하거나, 단지 내 도서관과 공부방을 만들어 마을공동체를 시작했다.

80년대 서울에서처럼, 중학교 학군문제로 인한 이기주의가 발생하거나 유해물질 배출 우려가 있는 기존의 기업들을 혐오시설로 낙인찍고 몰아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어쨌거나 신도시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아가고자 하는 땅을 보다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수십 년간 고군분투했다.

image.png <사진 3> 신도시아파트촌 독서방 인기 (1994.4.24. 동아일보 /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제 1기 신도시의 중심지를 가보면 서울중심지보다 상권이 활발하고 교통망과 교육시설도 자립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1기 신도시 사람들은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도 꽤 갖고 있고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가끔 ‘그때 서초하고 여기 하고 집값이 비슷했는데, 여기가 자연풍광이 더 좋아 이쪽을 선택했다’는 말이 정신승리처럼 들릴 때도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연구결과가 1기 신도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만족도를 증명해 준다.


5) 3기 신도시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 중에 1기 신도시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주거의 질과 서비스, 교통접근성과 편리성, 환경적 쾌적성, 경관 디자인의 우수성 등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인식한 비율이 61.9%로 긍정적 평가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결과는 무엇을 말해줄까? 가장 오래전에 지은 신도시가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출 수는 없다. 1기 신도시는 주택과 시설이 모두 노후되었고 주차장은 가구당 1대에 미치지 못한다.

6) 1기 신도시 중 분당과 평촌 신도시는 수도권 내 광역 거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1기 신도시는 서울로의 통행비율이 2002년부터 점차 감소하여 서울에 대한 의존성이 낮아지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7) 1998년부터 2010년까지의 1기 신도시는 대체로 45세 이상과 이들의 자녀인 20대 초반의 인구도 동반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기 신도시의 학생통학거리는 보행반경 500m 내에 위치한 경우가 58.1%인데 반해 2기 신도시는 29.7%에 불과했다. 주차장은 1기 신도시가 2기 신도시의 절반 꼴이다.

8) 평촌신도시 거주 여성들의 가구 교류형태를 조사한 연구에서는 신도시 여성들 중 40% 이상이 원가족과 실제 가까이 살면서 살림살이에 도움을 받지만, 부모세대의 개입을 적게 받는 생활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몇 가지의 연구결과는 살면서 느끼는 1기 신도시 사람들의 정서를 증명해 준다.


2021년 국토연구원 <국토정책 브리프>를 통해 1,2기 신도시가 입주시점에 서울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냈으며 따라서 수도권 주거 안정에 기여했다고 발표했다. 신도시 지역은 조성 후 10년간 인구 증가세를 지속하여 수도권 내 균형발전에도 긍정적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수도 서울과 가까운 1기 신도시는 인구 및 산업분산 효과가 있고, 거점 역할을 수행하나, 2기 신도시는 수도권 공간구조 재편에 따른 영향이 미흡하며, 생활기반이 취약해 자족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국토연구원은 수도서울을 떠받치는 형태로 시작한 신도시가 나름대로 독자적인 도시로 발전해 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녹물이 나와 수시로 배관청소를 해야 하고, 부족한 주차면 때문에 시시때때로 말다툼이 있고, 건물은 낡아 초인종은 사용하는 집이 없는 게 1기 신도시 공동주택의 현실이다. 역세권의 작은 평수일수록 세만 놓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세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인테리어 공사가 경쟁적으로 벌어진다. 이 때문에 건물 내 진동이 끊이지 않는다.

image.png <사진 4> 아파트단지에 살다가 입양된 고양이 (2024, 사진 필자 제공)

지난 4월 1기 신도시 특별법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작되면서 올해 6월부터 5곳의 선도지구를 공개모집하고 있다. 2027년에 선도지구를 착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기 신도시의 각 아파트단지는 주민 60% 이상의 동의, 중동의 경우 용적률이 높아 70%의 동의를 받은 뒤, 몇 가지 조건을 심사하여 선도지구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아파트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로 선정되기 위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재건축보다는 리모델링을 선호한 사람들도 있는데 리모델링은 수평, 수직, 별동 증축을 통해 집 숫자를 늘린다. 늘어난 주택은 일반분양하여 리모델링 비용으로 사용한다. 집값이 오르면 수익이 될 수도 있다. 공사과정에서 지하를 더 파서 주차장을 확보할 수도 있고 재건축에 비해 추진 공정과 부동산 거래가 자유로운 편이다. 그러나 모든 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에 리모델링으로 결정했던 단지들도 결정을 철회하거나 당장 이번 달부터 이주하기로 한 단지도 다시 의견이 갈려 어수선하다.

리모델링이든 재건축이든, 어쨌든 사는 사람들이 분담금을 내서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은 나중에 집값이 더 올라 분담금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인데, 지난 몇 년 사이 공사비가 폭등했다. 현재 거론되는 재건축, 리모델링 분담금 비용은 적게는 2-3억에서, 5억을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중동의 어느 아파트단지는 “분담금이나 용적률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주민동의를 받고 일단 삽을 뜨자는 거다.

image.png <사진 5> 리모델링이 결정된 1기 신도시아파트, 재건축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2024. 7. 사진 필자 제공)

1기 신도시를 만든 것은 세월


1기 신도시를 걸으며 ‘뭐 이런 동네가 다 있어!’하고 짜증을 내던 내가 바로 그 1기 신도시에 산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는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어 아이들은 길을 건너지 않고 구름다리를 건너 학교를 갈 수도 있다. 산책로에는 이른 아침부터 노인들이 나와 있다. 이 산책로에는 잘 걷지 못하는 반려견들이 노인들과 함께 느리게 산책을 한다.

“30대에 여기 들어와, 애들 다 여우고(결혼시키고), 얘는 심심해서 데려왔지. 근데 이제 얘가 나보다 늙었어.”

신도시와 함께 자란 커다란 나무들은 여름마다 긴 터널을 드리운다. 현관문을 열어놓고 지냈다는 20년 전의 초등학생들은 1기 신도시의 복도식 아파트가 고향이다. 자기들이 살던 아파트, 교복을 사러 가던 상가가 사라지고 초대형 신규단지가 들어선 것을 목도한 청년들은 “왠지 모르겠는데 그냥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image.png <사진 6> 1기 신도시아파트의 풍경 (2017, 사진 필자 제공)

1기 신도시 아파트 중 어느 곳은 마당에 평상이 있다. 지붕이 있는 정자형태도 있다. 보도블록은 수시로 깨졌고, 화단은 붉은 흙이 드러났지만, 그 옆에 놓인 평상은 오후마다 노인들이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다. 콩을 까거나 나물을 다듬거나 먹거리를 준비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화단이 넓은 1층은 계절마다 다른 꽃이 핀다. 주민이 내놓은 화분에서는 이국의 화초가 무럭무럭 자란다. 커피를 타서 노인정을 가는 노인이 있다. 80대의 주민 할머니가 70대의 경비원에게 자기 밀차 좀 고쳐보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젊은 사람들은 그저 교통이 좋아 짧게 머물다 사라졌지만, 노인들은 아파트 사이의 커다란 나무처럼 고스란히, 자기 집과 함께 늙었다. 2018년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는데, 노인들은 에어컨을 켜지 않고 평상에 나와 나무 그늘에 의지하며 부채질을 했다.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에 있는 어린이 공원은 하루 종일 북적인다. 아침에는 운동하는 노인들, 학교를 가는 아이들이 후다닥 뛰어가고, 오전에는 인근 어린이집 아기들이 나와 아장아장 걸으며 햇볕을 쬔다. 점심시간쯤이 되면 요구르트 배달원과 잡곡을 파는 여자가 자리를 잡는데, 그 옆에 호박 같은 열매채소와 푸성귀를 파는 사람도 자리를 잡는다. 캣맘이 나타나면 고양이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며 고양이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노을이 내려앉으면 아이들이 공원에 앉아 가방을 던져놓고 숙제도 하고 춤연습도 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어린이들 사이로, 내가 지나간다.

이제 그 공원 주변에는 재건축 추진, 성공하겠습니다, 기원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노동으로 돈을 벌어 악착같이 모아, 집을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집을 한 번 팔고, 또 한 번 팔 때마다 재산이 불어나는 걸 경험한 사람들은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포기할 수 없으리라.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오는 걸까.


2020년, 안양, 군포, 의왕, 과천을 중심으로 경비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경비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고발하고 상생협약을 맺는 과정을 지켜봤다. 경비원들의 급여를 차압한 채, 주민대표들 사이에서 인감도장이 무기가 되는 것을 보았다. 아파트 지하실에는 곰팡이와 함께 노동자들의 휴게실이 피어있다. 반상회가 사라진 아파트에는 골프동호회가 생겼다. 코로나팬데믹이 지나 부녀회가 사라진 곳에는 마을장터도 서지 않는다. 대형 단지가 들어서길 기다리던 인근 시장 상인들은 새벽배송 트럭 뒤로 팔리지도 않을 과일을 진열한다.

새로 지은 대규모 단지의 후문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문만 열어두고 보행자가 가로지를 수 있는 길은 막아버렸다. 그래도 누군가는 평상에 나와 나물을 다듬고, 늙은 개와 산책을 하고, 이슬 맞은 고양이의 밥을 준다.


늙은 것은 퇴출된다. 소거하고 삭제시키는 과정에서부터 셀 수 없는 돈을 끌어와 과거와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짓는다. 94년 3월 8일, 매일경제신문은 노동부의 발표를 크게 싣는다. 신도시 건설이 본격화된 89년 말부터 4년 동안 신도시 및 지하철 건설 현장에서 1백94명이 사망하고, 8천8백45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살던 사람들은 밀려나가고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찾을 수 없다. 1기 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서울에서는 작은 아파트들의 슬럼화가 문제였다. 알면서도 같은 길을 거듭해 간다. 1기 신도시 단지들이 주민동의를 거쳐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수익을 배분한다 해도, 사람은 죽어갈 것이다. 아파트를 짓는 사람도, 아파트에 살던 사람도, 아파트를 관리하던 사람도, 죽어갈 것이다. 여름을 견디게 해 주던 나무도 사라지겠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로 부은 시멘트가 단단해지면 마을도 새롭게 생겨날까.

image.png <그림 7> 코로나이전, 1기 신도시 단지 사잇길의 오후 (2017, 사진 필자 제공)

1978년 한 건축학자는 인간을 위해서는 아파트를 짓더라도 저층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8년 한 정치인은 아파트공동체를 위해 소규모의 주민회관을 단지별로 지어서 사회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8년 12월, 서울에서는 아파트 관리원 연합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이 모든 주장과 노력은 집값에 묻혀 사라졌다.

1995년 4월, 동아일보는 “신도시는 지금”이라는 기획기사의 마지막으로 “꿈의 도시, 희망은 남아있다”라는 헤드라인을 걸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신도시의 희망은 무엇일까.

더 오를지도 모르는 집값인가, 기후위기를 막아줄 커다란 나무일까. 신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의 고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구도 다치지 않고, 폭탄을 돌리지 않고, 1기 신도시는 콘크리트로 된 마을로 기억될 수 있을까. 역사상 겪어보지 못한 전환기에 들어섰다.


위 기획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변화와 개선을 위한 작업은 정부자치단체 그리고 주민들 모두의 몫이라는 진단이다.” 30년이 지났는데, 기사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때도 지금처럼 무력감이 가득했는지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다 풍족해졌는데,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다. 자발적으로 만들었던 단합대회와 도서관과 자치조직은, 이제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소리 없이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집값이라는 허상이 모든 것을 삼켰다. 진격의 괴물이다.


1) 95년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을 차용, 변형했습니다.

2) 6월 4일, 아파트 주민, 번잡해진 환경 불만

3) 통, 반으로 구분된 가장 작은 행정단위인 반(班)의 주민들이 모이는 회의

4) 1970년대부터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참고

5) <수도권 신도시에 대한 주민의 인식 평가 연구> 윤정중, 윤정란 (2019)

6) <국토정책 브리프 : 수도권 신도시정책, 평가와 발전방향> 국토연구원 (2021. 6)

7) <1기 신도시의 도시재생과 관리방안 연구> 경기개발연구원 (2011)

8) <평촌 신도시의 인근접거주 가구의 교류실태 분석> 전현재, 최정민 (2015)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수요일엔마프'


수요일엔마프 마을큐레이터 이하나(문화공동체 히응 대표)



작가의 이전글민간공유공간의 관계 맺기와장소성에 대한 경험적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