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민주시민으로 살 수 있을까
지역에서 어떤 사안을 놓고 의견을 수합할 때마다 나오는 얘기는 ‘민주주의는 어렵다’는 것이다.
협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 과정이 여간 복잡하고 까다롭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다수결의 원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수결은 폭력적이고 소수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인권, 다양성, 환경에 대한 의견은 때로 곳곳에서 충돌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어느 바닷가 지역에 나무로 된 데크를 깐다. 장애인도 휠체어로 바다구경을 할 수 있다. 환경우선주의자들은 생태를 해치는 행위라 비난할 수 있는데, 여기에 장애인권을 보장하는 설치물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대놓고 비난하기 어려워진다.
일상생활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문제가 있다. ‘계단으로 다니면 전기를 아낄 수 있어요.’는 장애인은 전기를 아낄 수 없으니 환경을 파괴하는 게 되느냐는 반발에 부딪힌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주장하는 강도의 수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도 있지만, 반면 상호 조율과 양보, 타협이 가능하다.
생태환경을 자연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 장애인의 이동권리가 더 우선하는지, 무엇을 우선해야 하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해 버리면 더 이상의 타협은 어려워진다. 세상의 모든 일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모두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과정에서 감정의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타인의 의견을 반대할 경우 의사전달을 감정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저 이는 왜 사사건건 내 의견에 반대하지?’라는 질문을 품고 반대자를 바라본다. 사람은 좋아하지만 의견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눈치다. 의견과 감정을 분리하자고 이야기해도 잘 되지 않는다. 오래 묵은 습관이다. 감정을 교류할 시간이 부족하다. 토론회는 2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중요하다면 우선순위를 챙겨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선택과 집중, 자본주의에 충실해진 사람들은 무엇을 우선결정할지 왈가왈부한다. 당사자들의 견해는 종종 묵살당한다. 어떤 사안은 대안이 없기도 하다. 계단으로 다니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그 외의 운동법이 있지만 휠체어는 계단을 절대 오를 수 없다. 바닷가의 몇 km짜리 데크를 설치하는 문제는 여가의 영역이라 날카롭게 반응하기 어렵다. 애매하다는 것이다.
애매한 것을 철저하게 따지기 싫은 게으름이‘민주주의는 어렵다’는 너무 쉬운 결론을 가져온다.
2012년부터 2024년까지 꾸준히 학교와 기관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만났다. 무려 13년이니, 그 사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남았다. 학생들은 인권과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났다. 그 시절을 함께 살아온 어른들보다 훨씬 훌륭했다. 그러나 각 사안에 대한 디테일은 모두 부족했다. 장애인의 권리는 당연하게 인정했으나 장애의 다양성은 알지 못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의 경우 전맹(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만 존재하는 줄 안다거나 청각장애의 경우도 모든 것이 들리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어린이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교사가 있고, 누구님이라고 부르면서 존대어를 쓴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서로 존댓말을 쓰고 누구님으로 칭하는 문화가 생겼다. 그러나 제도는 그렇지 않다. 중학교에 들어가 첫 시험을 보게 되는 경기도의 청소년들은 인격은 존중받았으나 제도권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되고 격리된다. 기준은 표면적으로는 성적이지만 그 속성은 학생이 속해 있는 가정의 경제적 능력이다. 어느 동네에 사는 친구는 음악학원도 많고 버스도 여러 노선이 있는데 우리 동네에는 눈을 씻고 봐도 취미로 음악을 배울 방법이 없고 버스노선은 하나뿐인 것이다. 학교와 학원이 먼 친구들은 시간싸움인 입시에서 불리해진다. 세상은 왜 불공평할까 질문할 때 어른들은 그게 ‘네가 가진 돈의 차이’때문이라고 답해준다. 명료해진다. 인권은 자본 앞에서 쉽게 불공평해진다.
학생들과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때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변화라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은 덕목을 갖춘 엘리트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바꿔내는 의지를 북돋기 위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먼저 학교 주변 마을의 문제점을 지적해 냈다. 불법주차된 차량, 깨진 보도블록, 놀이터에서 술을 마시는 어른들, 담배꽁초를 방치하는 지자체등, 생활의 불편함을 하나씩 나열하며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정책제안이 사업이 되면서 지방정부의 공무원들도 학생들의 의견을 귀 기울였지만 그뿐이었다. 정책제안 발표 자리에 과장은 와도 국장은 오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서다. 학생들은 ‘어른들은 어쨌거나 우리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고 씁쓸해했다.
민주시민교육은 그간 각 분야를 쪼개 이론적인 교육을 실행해 왔다. 교육행정기관에서 진행한 민주시민교육 연수는 강당에 교사들을 몰아넣는 집체교육이었다. 이 교육이 효과가 있었다는 건 아이러니다. 마을에서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은 행정체제와 법체계를 공부하고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여 더 나은 대안을 발견하자고 제안하곤 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마을의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고, 성인들은 집단민원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집단민원이면 어떤가. 그 과정에서 숙의와 토론이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누군가 등장한다. ‘그거 국회의원 압박하면 한 번에 해결될 것을 왜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어?’ 결정권을 가진 사람과 친분이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 지난한 숙의과정을 한 방에 해결해 버린다. 우리가 이것을 원하니 당신이 법안을 세우고 해결하라는 유권자의 압박에 민주적 절차는 고속으로 처리되었다. 시민교육의 목표는 달성했으나 교육의 과정은 증발한다.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는 민주시민교육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자기 권리를 지키고 타인의 권리도 존중하는 인권적 측면, 유권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주권회복 측면은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공화적 측면은 실패했다. 내 의견이 중요하면 타인의 의견도 들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깡그리 실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원인은 어디 있는가.
시간이다.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늘 최고의 효율을 내야 하는 국가구조 때문이다. 남의 말을 듣고 저간의 사정을 살피고 더 나은 대안을 하나씩 실험해 볼 시간이 없다.
이번 주 내로 이것을 제출하고, 이번 달 안으로 이 일을 처리해야 하며, 올해 안에 모든 것을 종료해야 한다. 숫자로 확인해야 하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증빙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속도는 마을을 유지할 수 없게 한다.
마을에 들어온 차들이 왜 보행자의 시야를 가리면서까지 주차를 해야 하는지, 담배꽁초는 왜 쓰레기통이 아닌 바닥에 떨어지는지, 치우지 않은 개똥은 왜 발생하는지, 꽤 많은 문제가 시간과 효율성에 관련되어 있다. 마을의 주민들이 타인의 시민성을 지적하기에 앞서 시민성이 왜 발휘되지 못하는지 확인하고 시민성을 지키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면, 충분히 대화하고 살피며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쳐놓는 그 외로운 마음에 대해 들여다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을 비민주적으로 해결할 관리자교육도 시간 때문이었다. 학교의 관리자들이 하나씩 민주적 숙의과정을 체험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한 군데 몰아넣고 집체교육을 시키는 것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사회의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마을은 만들어질 수 없다.
누군가는 엘리베이터를 써야만 하고, 누군가는 페트병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며, 누군가는 비닐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만나서 저간의 사정을 살펴야 한다. 먼 미래의 목표에 동의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하나씩 실험을 해나가며 합의에 이르는 것이 진짜 민주시민교육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가졌는가. 거대한 공동체에 의존한 채로 소소한 공동체는 비효율적이라고 걷어내도 무관하다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우리는 어디에 마음을 둘 것인가.
시민은 교양과 윤리를 갖춘 엘리트라기보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은 각자에게 중요하다. 우선순위를 효율에 의해 판단하지 않는 시민성은 가능할 것인가.
눈부시게 발전해 기적을 이뤘다는 한국 사회는 시민성마저 그 효율 위에 탑승시키려 한다. 주장을 빠르게 관철해 결과를 내는 것은 오히려 반민주주의에 가깝다. 민주주의는 느릴 수밖에 없다.
뜨거운 이 겨울, 많은 사람들이 체제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체제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는가. 과연 효율을 포기할 수 있을까. 천천히 마을을 걷고 산책을 하며 외로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우리는 그 시간을 가졌는가.
수요일엔마프 마을큐레이터 이하나(문화공동체 히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