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꽃동네 연구소'부터 '마을데이터 챌린지까지
마을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
마을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통계는 변화의 크기를 보여줄 뿐, 그 안의 삶은 담지 못한다. 언제부턴가 빈집 비율과 인구감소율 같은 수치가 마을을 설명하는 언어가 됐다. 우리는 이 수치로 지역을 나누고 순위를 매기며 비교한다. 이 방식은 객관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같은 수치를 가진 마을이라도 실제 모습은 다르다. 비교는 가능해졌지만, 맥락과 표정은 지워진다.
의정부 금오동 ‘꽃동네’의 기록 실험은 여기서 출발했다. 청년들은 행정의 숫자 대신 골목을 걷고 색을 채집해 사라져 가는 흔적을 남겼다.
마을은 데이터가 닿는 만큼만 드러난다
꽃동네는 오랜 시간을 지나온 자연부락이다. 2011년 미군기지 반환 이후 뉴타운 지정과 해제, 재개발 추진과 중단이 반복됐다. 재개발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가 길어지면 주거 환경 관리와 시설 투자는 뒤로 밀린다. 철거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수선이나 점포 정비에 선뜻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벽 도장과 간판 정비는 미뤄지고, 폐업한 점포의 흔적도 그대로 남았다. 마을은 낡아가는데 정비는 이뤄지지 않았다.
재개발 논의가 반복될수록 마을을 판단하는 기준은 노후도, 정비 필요성, 사업성 같은 지표로 좁혀진다. 행정 통계와 정책 판단에 쓰이는 공공 데이터는 대체로 시·군·구 단위로 집계되고, 세밀해도 읍·면·동 수준에 머문다. 하지만 실제 생활권은 그보다 작은 단위에서 움직인다. 같은 행정동 안에서도 골목마다 이용 방식과 체류 패턴은 다르다. 이 차이는 통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행정 데이터는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어떤 숫자를 고르느냐는 무엇을 지울지를 고르는 일이기도 하다. 노후도와 공가율로 보면 마을은 정비와 개발의 대상으로 정리된다. 골목의 이용 방식이나 점포의 변화 과정, 지역 안의 관계망은 드러나지 않는다.
기록의 방식이 곧 관점이다
의정부 청년 기획자들이 2024년부터 진행한 '빛바랜 꽃동네 연구소'는 마을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 작업이다. 외벽의 색, 사물 표면의 흔적, 폐업 뒤에도 남아 있는 간판처럼 행정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이 출발점이 됐다.
작업은 사소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바로 골목에서 본 오래된 ‘고추장 통’이었다. 햇빛과 공기에 오래 노출되며 바랜 색은 기존의 색이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청년들은 이 통을 시작으로 꽃동네 골목의 색을 수집하고, 인쇄용 색상 모델인 CMYK 같은 표준화된 수치와 ‘안매운노랑고추장통색’, ‘덧칠된 수영장색’ 같은 이름을 함께 붙여 ‘꽃동네색팔레트’를 만들었다.
시선은 간판으로 이어졌다. 꽃동네에는 폐업 뒤에도 간판이 남아 있었다. 바래고 깨진 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이 꺼진 간판은 행정 기록의 ‘폐업’이라는 한 줄보다 더 많은 정보를 남긴다. 이곳에 어떤 가게가 있었고, 어떤 생활이 이어졌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간판은 골목의 시간을 담은 기록이었다.
이들은 현재 간판과 지도 서비스의 로드뷰를 대조해 사라진 가게의 흔적을 확인했다. 옛 간판의 글자 형태를 따서 틀을 만들고 도로나 벽에 밀착시킨 뒤, 고압 세척기로 주변의 묵은 때를 걷어냈다. ‘아름다운 꽃이 되기’ ‘소소하고 확실하게’ 같은 문구가 바닥 위에 다시 드러났다.
‘꽃동네색팔레트’가 마을 표면에 남은 변화를 기록했다면, 간판은 그 골목에서 불리고 사라진 이름의 형태를 되살렸다. 행정 통계가 건너뛴 자리를 주민의 기록이 채운 것이다.
챌린지가 만든 것, 데이터와 데이터의 기준
‘빛바랜 꽃동네 연구소’의 방법론을 더 넓은 규모로 실험한 것이 2025년 ‘마을데이터 챌린지’였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와 의정부 청년 기획자들이 함께 진행한 이 프로그램에는 마을활동가와 청년단체 회원 59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3일 동안 꽃동네를 직접 걸으며 각자의 시선으로 대상을 정하고, 커뮤니티 매핑과 시각화로 확장해 13건의 마을데이터 콘텐츠를 만들었다.
결과물은 달랐지만 출발점은 같았다. 공공데이터에 없거나 행정 단위로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골목의 위험 구간, 생활권별 동선, 사라진 가게의 자리—을 직접 걸어서 건져 올린 것들이었다. 참가자들이 얻은 것은 기술보다 기준이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할지 스스로 정하는 경험이다. 이 경험이 이어질 때 마을데이터는 축적 가능한 기록으로 남는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마을공동체 데이터 아카이브’는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는 플랫폼이다. 한쪽에서는 마을을 걸으며 데이터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을 모아 축적한다. 관찰에서 출발한 기록이 흩어지지 않고 쌓일 수 있는 조건이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행정 데이터만으로는 담기지 않는 마을의 변화와 생활의 결을 주민이 직접 기록하고 축적할 수 있도록, 주민 주도의 마을데이터 아카이빙과 활용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마을이 자기 언어를 가질 때
시민이 직접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실천을 ‘데이터 행동주의(data activism)’라 부른다. ‘데이터 정의(data justice)’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가 데이터를 만들고, 누가 그 안에서 지워지는가를 묻는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불평등의 문제다. 마을데이터는 이 질문을 골목에서 실천한 것이다.
마을데이터가 바꾸는 것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마을을 읽는 방식이다. 행정이 정리한 숫자 바깥에 주민이 수집하고 이름 붙인 기록이 더해질 때, 마을은 외부의 언어 대신 자기 언어로 말하게 된다. 그 언어는 정책 협의의 자료가 될 수도 있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으며, 다음 세대가 동네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꽃동네에서 시작된 이 방식이 다른 마을로 이어질 때, 마을을 설명하는 언어의 지도도 달라진다. 언어를 가진 마을은 더 이상 설명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변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