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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Mar 05. 2022

[독후감]"샬롯의 거미줄"

글: 엘윈 브룩스 화이트 / 그림: 가스 윌리엄즈 / 출판사: 시공주니어

[대 출 확 인 증]
-도서번호 : MC00263600000
-도서제목 : 샬롯의 거미줄
-반납예정: 2022-03-08 23:59:59

까먹을까봐 순간순간 적어대곤 하는 메모장에 "샬롯의 거미줄 읽어"라고 끄적여 놨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도대체 어디서 보고 적은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매체의 권장도서를 메모해놓은 건지, 뒤적이던 스마트 폰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인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브런치 작가님 중에서 누가 추천해준 것인지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 같다가도 다시 어두운 터널 속으로 빠진다.


어떤 종류의 책인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본다. <초등 추천 도서>라고 검색된다.

'아, 애들 보여주라고 적어 놓은거구나'

보통 이렇게 급하게 메모해 놓은 책들은 양서인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꼭 중고도서나 새책으로 구매해서 소유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아이들의 책들은 이미 빼곡한지라 "살롯의 거미줄"은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집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침 첫째 딸이 대출증을 같이 만들어 달라고 해서 들른 김에 대출을 해 왔다.


생각보다 책이 두껍다. 첫째 딸한테 먼저 권하니 제 딴에 중학교 입학한다고 동화책 같은 책 커버 그림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9살, 7살인 둘째 셋째한테는 페이지 수가 많아 스스로 읽기 힘들고, 옴니버스 식이 아니라 끊어 읽기에도 벅찰 것 같다. 우선 아빠가 먼저 읽어보고 독서지도를 해주던가 아예 읽어 주던가 해야 할 것 같다. 우선은 나중에 읽자며 소파 한구석으로 던져 놨다.


차일피일 미루다 반납 예정일이 가까워졌다. 도서관 앱으로 반납연기 신청을 하니 불가하다고 뜬다. 다른 사람이 예약을 걸어놓은 것 같다. 이대로 읽지 못하고 반납하기에는 좋은 책을 놓치는 것 같아 급하게 읽어보기로 한다.

'진짜 이 눔의 미룸병은 못 고쳐!'

원망하며 급하게 책장을 넘긴다.


말괄량이 어린소녀가 등장한다. 약하게 태어난 새끼돼지를 도축하러 가는 아빠를 막아서며 결국 그 새끼돼지를 구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꼭 우리 딸들을 보는 것 같다. 재잘재잘 거린다. 느낌이 좋다.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다. 책장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어어 근데 돼지가 말을 하고, 거위가 충고를 하고, 양이 거절을 하고, 쥐가 흥정을 하고, 거미가 친구가 되어준다 말을 하네? 에이 역시 그냥 애들이 보는 책이네. 힘이 좀 빠진다. 초점을 조금 풀고 스윽스윽 빠르게 넘긴다.


"밤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윌버의 배는 비어 있었지만, 머리는 가득 차 있었다. 배 속은 비어 있는데 머릿속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잠들기 힘든 법이다" -'샬롯의 거미줄' 중에서-    

어어 근데, 이건 애들 감성이 아닌데? 조금 흥미가 생기며 문장들을 조금 더 또렷이 음미하기 시작한다.


책이 굉장히 시끄럽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려면 많은 억양을 넣어가며 여러 목소리를 내야 할 것 같다. 포근함도 있다. 헛간, 남향, 오후, 낡은 의자, 깃털, 새끼 거위들의 부화, 여물통, 건초더미... 그리고 꼬릿하고 구수하고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풍겨온다. 이 책이 좋아진다.


새끼돼지 윌버는 헛간의 여러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자신에게 냉혹한 현실만 말해주는 그들에게서 친근감을 느끼지는 못한다. 외로움을 느끼며 축 늘어져 있을 때 샬롯이라는 거미가 말을 걸어온다.

"친구를 원하니, 윌버? 내가 네 친구가 되어 줄게. 하루 종일 너를 지켜봤는데 네가 마음에 들었어"


보잘것없는 거미지만 친절하고 따뜻하다. 새끼돼지 윌버는 벌레를 잡고 피를 빨아대는 거미 샬롯에게 약간 거부감을 느꼈지만, 이내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친구가 생겼다며 기뻐한다. 윌버는 약한 존재로서 우왕좌왕한다. 거미 샬롯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만 적극적으로 또는 영리하게 상황을 대처해가며 옆에서 도움을 주고 윌버를 성장시킨다.

그 둘의 티키타가를 보며 나이가 들며 얼룩져 있는 나를 반성해본다. 사람을 만날 때 우선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나, 서로 유대관계가 형성되더라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경계의 끈을 놓치는 않는 나,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나?, 나에게 도움이 되나?, 인간관계는 GIVE & TAKE라고 말하는 나...


주연인 줄 알았던 조연, 말괄량이 소녀 펀만 동물들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설정이다. 어쩌면 이 책의 이야기 자체가 펀의 머릿속 상상 일 수도 있다. 펀은 동물들이 하는 말을 엄마 에러블 부인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에러블 부인은 아이가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며 걱정한다. 그래도 아이의 말을 끝까지는 조목조목 들어준다. 나는 내 딸들의 말을 얼마나 끝까지 들어줬는지 반성해본다. 그 엉뚱함이 사라지기 전에 많이 들어줘야겠다. 좀 더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도축될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윌버는 걱정뿐이지만 샬롯은 그 여린 친구를 돕기 위해 우직하게 노력한다. 작고 보잘것없는 미물에 불과하지만, 헛간의 덩치 큰 어떤 동물보다도 리더십이 강하고 영리하다.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고 여럿을 모아 대책회의를 한다. 그리고 실천하고 결과물을 낸다. 그렇게 샬롯은 약한 존재로 태어난 윌버를 특별대우받는 돼지로 키워낸다. 그리고 온 열정을 다해서 친구를 응원해주고 삶을 마감한다.


눈물이 고인다. 애들이나 보는 책이라며 약간 무시했지만 책을 덮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모르겠다.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다. 애틋한 우정? 헤어지고 싶지 않은 아쉬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우직한 노력?... 모르겠다. 그냥 뜨거운 감정이다.


책 초반 내 딸들처럼 재잘거리는 시끌시끌함에 흥미가 돋았는데, 결국 나와 비슷한 윌버를 만난다. 그리고 내 주위에 샬롯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샬롯만 윌버를 돕는 것은 아니다. 이익만 챙기며 투덜투덜거리는 쥐 템플턴, 살벌한 현실을 이야기해주는 늙은 양, 잔소리 꾼 암거위, 삼촌 주커만, 일꾼 러비... 어떻게 보면 윌버에게 적대적일 수 있는 그들도 결국에는 조력자들이었다. 고였던 눈물을 훔치고 내 주위를 돌아보니 숨은 조력자들이 많다. 스스로 부담을 가지고 있으니 벽이 생긴 것일 거다. 이제는 벽을 조금 허물자고 다짐하게 된다.


3월 8일이 반납예정일이다. 남은 3일 동안 둘째와 셋째에게 모두 읽어주기 위해서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여러 동물들, 여러 사람들 역할을 위해 목을 한번 가다듬는다.

"크음 크음, 애들아 이리 와바라, 아빠가 재미있는 책 읽어 줄게"


감히 말씀드립니다.  

샬롯의 거미줄,

초등추천도서가 아니라 어른추천도서로 권장합니다.





다음 [부엉이 아빠 독후감]을 예고합니다.

제목: 나는 매일 교도소에 들어간다.

작가: 김성규

출판사: 밀리의 서재

출간일: 2021.11.30


미루는 버릇 때문에 차일피일했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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