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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Jun 25. 2022

EP9. 오랜만에 찾아온 슬럼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 찰나에도 글자들을 제대로 때려 박고 있는 것인지, 나의 잡념을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떠한 난관이 있던지 간에 무조건 시도해보자고 했던 마음가짐은 다시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있다. 당차게 출발했던 백수는 6개월 만에 또 슬럼프에 빠졌다. 인생은 싸인 코싸인의 곡선이며 슬럼프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 예상했고, 대비하기 위해 단련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슬럼프에 이렇게 쉽게 허덕이고 있다.


"야, 에이징 커브 잘 버텨라, 너 봐봐라, 투수들이 나이 먹으면 갑자기 구속이 느려지고, 슬라이더 각이 무뎌지고 홈런 처 맞고 하잖아, 지금 너가 딱 그 상태야. 젊었을 때를 생각하지 마. 뒤돌아 보면 까먹고 하는 게 우리 나이 때에 시작되는 거야."


잔소리 꾼 친구 녀석이 어떻게 귀신 같이 나의 상태를 알아챘는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전화기에 대고 침을 튀기고 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는 그 녀석은 내가 7월 초에 보는 국가자격시험 준비에 분명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을 거라 예상하고 정신 차리라며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일 수도 있다. 잔소리의 의도가 다분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래 그래 맞장구를 치는 건 현재 나의 민낯을 들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구의 말대로 감퇴되는 기억력 때문에 슬럼프에 빠진 것 같기도 하다.


법규와 규칙들이 빼곡한 페이지를 읽고 쓰고 머릿속에 주워 담고, 잠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 그 페이지로 돌아오면 새로운 페이지를 보는 것 같다. 모의고사 문제 속 다섯 개의 보기들이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죄다 틀린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가 한 달 동안 공부를 한 거야 만 거야?...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한글로 뜻을 쓰고, 써놓은 한글 뜻을 보며 다시 영어로 적으려고 하니, 들고 있는 펜이 꼼짝하지 않는다. 몇 번을 쓰고 외우고 소리 내서 읽고 반복을 해야지나 꾸역꾸역 머릿속에 남는다. 조바심에 단어장 앞장으로 돌아가 몇 달간 외운 단어들을 쭉 펼쳐보니... 이건 뭐,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여태껏 시간 낭비만 했던 거야?...  


필사를 위해 책을 펴고, 붓펜을 들고, 공책을 펴고, 쓸 차례의 문장을 읽고, 공책으로 시선을 옮겨 그대로 적으려는데... 문장의 첫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다시 책을 보고, 단어를 하나 쓰고, 다시 책을 보고, 그다음 단어를 쓰고, 반복을 거듭해서 겨우 문장 하나를 써낸다. 이래서는 필사의 의미가 없다, 그냥 글씨를 옮겨 적는 수준이다, 반성하며 책의 문장을 한 번에 옮겨 적으며 객기를 부려본다. 공책에 옮겨 적은 그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책에 아로새겨있는 거장의 수려한 문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장이 쓰여있다.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냐며 좌절감에 빠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표현해야 할 무언가가 있는데 알맞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닥치는 대로 적어보는 게 우선이라고 알고 있지만, 자신감 없는 단어로, 문장으로, 과연 이렇게 쓰면, 저렇게 쓰면,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의 무지함이 탄로 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얼마 전 공모전에 제출한 소설은 도대체 어떻게 써낸 거야?...

 

무식이 용감이라는 방패를 가지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작한 6개월 전의 나는 온데간데없다. 또 움츠려 들려하고 있다. 내가 지금 가려는 길이 올바른 것인지, 백수생활 시작하고 6개월 간 걸어온 길이 헛된 길이 아녔는지, 아니, 회사를 그만둔 자체가 잘 못된 건 아닌지 의심하며 숨으려 하고 있다.


"야, 너만 그런 거 아니라니까!, 우리 나이 때가 그런 거라고! 에이징 커브 잊지 마라"

그래, 그게 맞는 거겠지? 누구나 다 그럴 것이라 생각하며 친구의 호통에 동조해본다. 언제나 그래 왔듯 상승곡선은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자기 위로를 해본다. 더 높이 날기 위해 잠시 움츠려도 괜찮다고 토닥여 본다.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꾸준함만 잃지 말자 다짐해본다.


오랜만 찾아온 슬럼프... 이것마저 즐겨보자며 다짐해본다. 잘 해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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