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일이다.
교양과목으로 '생활과 원예'를 선택했었다.
선택 이유는 점수를 잘 준다는 소문과 소위 '족보'라 부르던 기출문제 모음집이 학과유물로 잘 보존되고 있어, 시험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다는 친구 녀석의 출중한 영업실력 때문이었다.
전반적인 내용은 강의 시간에 배운 식물에 대한 지식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원예 식물에 접목시켜 앎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제법 지나고 학기가 중반을 넘어섰을 때였다.
강의를 시작하신 교수님이 그날은 다른 구성의 수업을 가져오셨었다.
"지금부터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여줄 거예요. 애니메이션을 다 본 후 답안 작성지를 나눠주면 그곳에 감상문을 써서 제출해 주세요. 성적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고 느낀 대로 써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씀을 마치시고는 영상을 틀기 위해 분주하게 프로젝터 리모컨을 만지작거리셨었다.
그러다 영 안 되겠는지 조교를 불러 멋쩍은 미소와 함께 자신이 기계치임을 하소연하시며 도움을 부탁하셨었다.
조교가 숙련된 솜씨로 이곳저곳 만지고, 리모컨으로 재생버튼을 누르니 영상이 시작되었었다. 센스가 발군인 조교님은 가는 길에 소등까지 완벽하게 해 주시면서 퇴장하셨었다.
영상의 첫 장면을 보자마자 나는 두 눈을 의심했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본 적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 1987
그때도 인상 깊게 봤던지라 생경하게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다시 보는 기회를 얻는 것은 다른 학생들에게 반칙처럼 느껴졌었다.
지금 기억을 돌이켜보면 나는 다른 사람이 영상에 중해 있을 때 이미 감상문을 쓰고 있던 것 같다.
답안 작성지에 물 흐르듯 써 내려갔었다.
오롯이 기억의 힘만 빌려 소감을 진실되게 담아내려고 고심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노인의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을 온전히 담아내고 싶어 어떤 문장은 몇 번이고 문장을 썼다 지웠었다.
이윽고 영상이 끝나고, 다른 사람들은 감상문을 쓰느라 몰두하고 있을 때 나는 눈을 감고 노인을 떠올리며 고등학교 때 그가 내 마음속에 심어준 나무는 잘 있는지 확인했었다.
일주일 후,
강의를 들으러 가니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오늘은 강의 시작 전에 지난주에 걷었던 감상문 중에 감명 깊게 읽은 세 개를 읽어드리는 시간을 먼저 가질 거예요."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길 바랐다.
강의 후에 유일하게 공강이 있는 요일이라 끝나고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교수님은 농과대학 '아무'와 국문학과 '무개'의 감상문 낭독을 끝마치곤, 마지막 감상문을 집어 들고 말씀하셨다.
"개인적으로는 이 글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감상을 아주 잘 녹여낸 글이었어요. 이 글은 동생대 "아무개"가 썼는데, "아무개!?"왔으면 손 들어봐."
'아무개? 내 이름이잖아!'
내 이름이 교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어디 숨고 싶었다.
천성이 주목받는 걸 싫어하고, 억지로 손까지 들고 있으니 강의실의 모든 눈이 나를 향해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친구란 녀석들은 연신 "오 오"거리며 깐죽을 놓는 게 아닌가?
교수님의 낭독이 시작되고 조용해진 강의실을 온전히 채워준 건 나의 감상문 속 활자들이었다.
제법 넓은 강의실의 공기가 내가 쓴 글로 채워지는 경험은 인생에서 손꼽을만한 아주 그럴싸한 경험이었다.
내가 감상한 영상은 활자가 되고, 내가 썼던 활자가 소리로 변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창피했던 마음은 씻겨 내려가고 조금은 뿌듯함이 자라났다.
낭독이 끝나자 수강생들은 박수를 쳤다.
친구들도 "오 잘 썼는데~" 라며 어깨를 주먹으로 톡 밀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응원이 되는 값지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잘 써야지라며 힘을 빡줘서 글을 쓰긴 싫었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이왕이면 왜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아쉽게도 그날의 감상문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교수님께서 동의를 구하고 가져가셨었다.
그래서 며칠을 세월의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마음속 다락방에서 떠오를듯한 말듯한 기억을 찾으려고 한참을 뒤적거렸다. 분명히 집안에 둔 거 같은데 어딨는지 도통 몰라서 느끼는 뻑뻑한 답답함. 아시는가?
에필로그 (Epilogue)
노인은 황폐한 땅에 묵묵히 나무를 심는다. 그의 나무는 희망의 상징이고 그의 꿈이다.
우리가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의 숭고한 행위를 목격할수록 신비하고, 오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의 숭고함이 영상 밖으로 아지랑이처럼 번져 하나 둘 관객의 마음속에 시나브로 스며든다.
가슴에 스며든 아지랑이는 누군가에게는 꿈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된다.
(끝내 찾지 못한 기억의 단편들...)
노인은 황폐한 땅에도, 우리의 마음속에도 나무를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