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by 한배곧

글을 쓰다 보면 마음 상하는 일이 있다.

초고를 다 써놓고 맞춤법 검사를 눌렀을 때,

빨간 줄이 두더지처럼 튀어나와 나를 놀릴 때가 그렇다.

거기다 가물가물한 단어 하나, 엉킨 문법까지 더해지면

자존심은 손끝에서 조금씩 부서진다.

우리는 이렇게 오늘을 깜빡하며 내일을 산다.


핸드폰을 찾으려 주머니를 뒤졌는데 없다.

방으로 가봐도, 탁자 위에도, 집 나간 고양이처럼 흔적조차 없다.

이럴 땐 세상이 멈춘다.

봄날의 대청소하듯 온 집을 뒤적이다가

결국 등잔 밑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괜히 혼잣말을 한다.

“나도 이제 슬슬 시작인가 봐.”


치매는 무섭다.

기억을 감옥으로 바꾸는 병이라서 더 그렇다.

어떤 기억이 남고, 무엇지 먼저 지워지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기억의 종류에 따라 좋은 기억만 남는 ‘착한 치매’와

나쁜 기억에 갇히는 ‘나쁜 치매’가 있다고 들었다.

착한 치매는 좋은 기억이 대부분이라 환자가 춤을 추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하지만,

나쁜 치매는 나쁜 기억이 대부분이라 그 반대다.

환자는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붓고,

물건을 던지며 주체할 수 없는 화를 표현한단다.

그래도 언젠가 닥칠 일이라면,

착한 쪽이 조금은 덜 서럽겠다.


치매는 슬프다.
기억의 감옥에 갇힌 사람도, 그 기억을 함께 나누던 이들도,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손길마저 슬퍼진다.
환자의 사정을 아는 이들은 밤마다 베갯잇을 젖게 한다.
그 눈물이 식기도 전에 또 다른 밤이 찾아온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부모가 자식이 태어나기 전의 기억 속에 머물러 눈앞의 자식을 알아보지 못할 때다.
그 순간, 마음은 찢어지는 게 아니라 조용히 부서진다.


핸드폰을 보다가 우연히 홍지민 씨의 영상을 보았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예전에 노래강사였다고 했다.
그 기억 속에 머문 채, 세상의 시간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계셨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른 ‘짠짜라’를 듣는데, 눈물이 불쑥 쏟아졌다.
그 노래가 이렇게 슬픈 노래였던가.
슬픔이 아니라, 슬픔을 견디는 노래였다.

딸의 마음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부정하고, 자책하고, 하늘을 원망하는 밤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겠지.
후회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습관이라는 것을.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딸을 잊었다면, 이제 딸이 엄마의 기억을 만들어주려는 듯이.
엄마의 세계에 다시, 노래라는 문을 열어주려는 듯이.


홍지민 씨와 어머니의 듀엣을 보고 난 뒤, 내게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어떤 행동을 마친 뒤엔 꼭 세 번씩 확인한다.
가스밸브를 잠그고, 밸브 세 번.
문을 닫고, 문고리 세 번.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충전 중 세 번 속으로 되뇐다.

기억이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길 바라는, 나만의 작은 주문이다.
그 덕분인지 요즘은 핸드폰을 곧잘 잘 찾는다.

우리는 이렇게 오늘도 깜빡하지만, 그 깜빡임 속에서도 내일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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