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은 결실이다

영화 <하얼빈>

by 소리소리


며칠 전 보훈처에서 김형석 관장에게 경고가 내려졌다. 충분치 못한 조치이고 개인적으로는 경고에 그칠 수 없는 위중한 사안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광복 80주년 연설 중 독립기념관 관장 김형석 씨의 "광복은 선물"이라는 발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김관장은 자신의 발언의 문맥을 보지 않았다고 억울해하면서 세계사적 관점과 민족사적 관점을 분리하여 상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했다. 즉, 독립군이 전쟁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미국에 패전한 결과로 얻어진 해방이기에 세계사적으로(그는 이 표현을 객관/합리를 대신하는 용어로 보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독립은 얻어걸린 행운과 같은 선물이고 독립을 민족의 항쟁의 결과로 여기는 것은 민족사적(주관적 또는 편협을 대신하는 용어로 보는 듯) 관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김관장의 주장에 대해 전우용 역사학자는 "무식한 주장"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렇다. 김관장의 발언은 무식의 소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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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사적으로 독립이 전쟁 승리로만 얻을 수 있는 결과라고 누가 정했는가? 그런 역사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20세기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한 나라들 중 전쟁이 아닌 항쟁과 외교로 독립한 국가가 전쟁을 통한 국가 보다 수적으로 더 많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예로 인도의 경우도 간디의 무폭력 민족항쟁과 외교 활동이 영국의 식민통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1947). 가나(1957), 튀니지. 모로코(1956), 필리핀(1946), 발트 3국(1991) 등 탈식민국가 대부분이 항쟁과 시위 그리고 외교와 협상을 통해 독립을 이루었다. 항쟁과 시위가 별거 아닌 것으로 김관장은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쟁보다 더 많은 피흘림과 무고한 시민의 더 큰 희생이 따르는 치열한 투쟁이다.


카이로 선언(1943)에서 추가적 사안으로 결정된 '한국독립의 약속'은 열강이 너무나 정의로운 국가로서 서로 간의 약속을 잘 지켜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건 국가 간에 조약이 아닌 그저 미국 영국 중국의 일본패망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는 성명에 불구한 것이다. 일본 패전 이후 우리나라를 땅따먹기 하려는 의지가 더 컸을 것으로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되건 그 성명에 우리나라가 주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불안한 약속이 이루어지게 만든 것은 임시정부의 국제관계에서의 외교활동과 3.1 운동을 시작으로 국민들의 식을 줄 모르는 항쟁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변치 않는 독립의지가 끌어낸 결과이다.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결과적으로 분단국가가 되었지만 어찌 되건 국민에 의해 자주권은 인정된 것이다.


그리고 독립운동에서 시작한 민주적 의식과 방식을 세워가면서 대한민국은 자주권을 보완하고 지켜내기 위해 경제, 국방, 외교적으로 지속적 분투를 해 왔고 국위선양을 위해 많은 국민들이 지금까지도 개인적 희생을 감래 하였다. 전 세계에 대해 항쟁은 계속되어 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권은 모두 '나의 것'이다. 이와 같이 자국민들의 독립에 대한 주체적 열망 없이 한 국가 공동체가 지속할 수 없는 것이 항쟁이다. 독립정신은 항쟁 중에 들불과 같이 번지고 그 불씨가 꺼지지 않는 이상 반드시 해방과 독립의 날은 찾아온다는 것이 세계사적 교훈이다. 그래서 군대를 쓸 수 있는 권력기관과 소수 엘리트들에 의한 독립전쟁의 승리 보다 전국민적 항쟁을 통한 독립이 국가로서의 민주적 결속력을 높여 건국의 초석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건국은 바로 개개인이 항쟁으로 지켜 온 국가 정체성과 독립 정신에서 시작한다. 독립에는 국민의 독립정신과 국가의식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국가 정체성의 중심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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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국제법상에서 볼 수도 있다. 국가의 3대 요소는 한 국가를 국제적으로 승인하는 기본적 기준이다. 사실상 조문에 있는 원칙은 아니지만 국제법적 기준과 같이 활용되는 국가의 3대 요소(국민, 영토, 주권)는 중학교만 나왔다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공교육에서 국가에 대한 개념은 초3, 4학년에 접하게 되고 중학교 2학년이면 형성되게 체계화되어 있다. 김관장의 발언을 "무식한 주장"이라는 전우용 학자의 비판이 맞는 것이 시험 치르기 위해 암기만 했어도 아는 것이 국가의 3대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를 형성하는 3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독립과 해방의 주체가 그러하듯 당연히 국민이다. 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으로 영토 소유권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는 국가가 국제적으로 훨씬 많다. 승인의 이유는 바로 국민이 영토와 주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승인하지 않는 국가는 그 분쟁에 연루된 국가들이 국가 형성의 본질이 아닌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유에서 미루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런 3대 요소를 형태적으로 갖추었지만 질적으로 그렇지 못한 국가를 국제적으로 "비정상 국가"라고 하고 이에 대표되는 나라가 북한이다. 즉, 주권(정부)이 국민에게 속한 것이 아닌 독재국가의 폭압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 35년이었지만 1919.3.1 독립운동 직후 국민들의 독립정신을 따라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를 출범시키고 그 활동이 보편적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수한 이후로 국가 정체성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비록 해방정국이라는 공백 상태가 있었으나 해방과 동시에 인정받은 것이고 승인된 것으로 보는 것이 국제적 인식이다. 즉, 국민이 국가의 핵심인 것은 국제법상으로 확연하고 대한민국이 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일본의 패전이 주된 요인이 아닌 일본의 침략이 있었음에도 국민이 국가와 국권을 수호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굳이 김형석 관장의 표현을 차용한다면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과 항쟁은 세계사적 관점과 국제적 관례에서도 인정되므로 세계사적 vs. 민족사적 관점을 이원화하고 상대화 할 이유가 없다. 이런 상대화는 불합리한 관점일 뿐 아니라 이것을 객관적이라 주장하면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과 그 정신의 가치가 가진 절대성을 마치 편협한 민족주의 정도로 폄하는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보인다. 그 목적에 대해 길게 말하지 않겠지만 짧게만 언급한다면 일본극우의 전범 사실과 불법적 식민통치 부정을 옹호하고 독립운동가들의 대민족적 업적을 깎아내려 친일세력의 자기 친일 행각에 대한 정당성 확보를 목적으로 한 물타기 효과가 그 목적인 것이다. 우리 민족과 국가를 대상으로 한 사기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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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과적으로 김형석 관장의 발언은 반 헌법적 일수밖에 없다. 영화 한 편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헌법조문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역시 헌법에 나와 있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에 그 정신과 역사적 실제 사건을 근거로 한다. 그의 발언은 대한민국이 정상적 자주독립국가로서 정체성에 도전인 셈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운으로 주어진 우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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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형석 관장은 독립기념관을 목사인 자신의 종교적 사적활동 공간으로 유용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언급한 "해방은 선물"이라는 발언이 담고 있는 의미가 성경적이지도 온전치 못함 역시 간단하게나마 다룰 필요가 있다.


김관장이 "선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가 목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 "선물"은 신앙을 대표하는 특별한 용어이다.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로 표현한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그러나 선물은 인간이 값을 치르고 얻을 수 없는, 어떤 노력으로 대신할 수 없는, 무한가치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표현하는 상징어이다. 구원이 아무런 가치가 없거나 우연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로우심과 선하심의 "결실"이다. 바로 무한 가치적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필연적 결실이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의 "선물의 신학"을 마치 우연으로 얻어지는 로또쯤으로 폄하하였다.


[사 61:1-2, 새 번역]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2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명을 예언하였고 예수님의 그 예언의 성취였다. 어떤 사람들이 구원에 속할 자격조건이 있느냐를 이 본문으로 분석할 필요는 없다. 오직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그의 뜻은 무엇인가를 읽어내야 한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인해 억압받고 고통받는 자들을 해방하시는 분이시고 그날은 그들에게는 해방의 날이지만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기도 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해방자이시고 그 뜻인 해방을 성취하시는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즉, 악으로부터 그의 백성들과 피조세계의 해방(구원)은 반드시 성취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 성취의 때는 그 뜻의 완성이다. 그것의 기독교의 종말론적 신앙이다. 이 신앙을 가진 자들은 구원을 희망하며 해방의 존재로 악의 구조 속에서 견디어 낸다.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다. 능동적으로 해방자의 삶을 산다. 바로 사랑이다.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인데 이 해방자로 살아가는 삶이 세상을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뜻의 완성으로 이르게 하는 섬김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하여 일하신다.


이 땅에 모든 해방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의 완성에 대한 일종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이다. 하나님의 완성적 해방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피 흘리신 사랑의 희생의 결실이 구원이듯 해방을 위한 독립운동가들과 일반국민들의 피흘림의 결실로 독립과 해방의 결실이 온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완성의 프로토타입이다. 누군가의 해방과 행복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을 상상하고 희망하게 한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난다는 것이 이것이다. 역사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신앙의 관점이다. 구원에 우연이 없듯 세속에서 일어나는 정의와 행복과 평화는 우연이 없다. 어떤 희생과 수고에 의한 필연적 결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추수를 우연이라 말하지 않는다. 추수의 날은 반드시 온다. 단 추수의 날을 기뻐할 수 있는 눈물로 씨를 뿌린 자와 그렇지 않은 자만이 남는다. 추수의 날이라고 모두가 추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1년을 꼬박 자신의 몸을 갈아 넣어 수고한 농부에게 추수를 우연이라고 하겠는가? 우리의 인생에 대해 하나님은 결코 우연이라고 헛되게 여기시지 않는다.


신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해방을 그 가치면에서는 값을 치를 수 없는 선물로 말할 수는 있지만 김장관이 의미한 것과 같이 우연으로 떨어진 행운으로 볼 수는 없다.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원과 해방이 뜻이신 하나님의 때에 우리 선조들의 피값으로 얻어진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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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끝으로 안중근 장군께서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을 다룬 영화 <하얼빈>의 오프닝 장면이 떠오른다. 홀로 안중근 장군이 두만강을 건너 연추로 가는 호수장면은 가슴이 터질 듯한 타격감을 준다. 꽁꽁 얼었지만 갈라져 균열이 나 있는 호수 위를 안중근 장군이 걷는 장면은 여러 해석을 낳는 중의적인 은유이다.


1) 혹자는 냉혹한 추위를 뚫고 목적지를 향하는 그의 힘겨운 발걸음은 안중근 장군이 사명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 보인다고 보기도 한다. 영화가 역사 다큐적인 성향보다는 개인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서사를 풀어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합리적인 해석이다.


2) 을사늑약 이후 조선의 주권을 빼앗아간 일본제국주의의 핵심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는 거사는 얼어붙은 강물에 균열을 내는 일과 같다. 이토의 죽음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의 서막이나 마찬가지이다. 안중근 장군의 이토 제거는 제국주의에 의미 있는 균열을 낸 가장 큰 타격으로 10년 후 3.1 운동을 비롯한 크고 작은 모든 민중항쟁의 신호탄이다.


3) 제국주의 패망에 균열을 낸 사건이면서도 안중근 장군이 성공한 거사는 역사의 흐름 가운데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토 저격은 이미 동학운동으로 시작한 민중항쟁정신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균열이 난 얼어붙은 호수 위 안중근 장군의 발걸음은 이미 불평등한 조선의 사회구조에 균열을 낸 동학운동을 발판으로 안중군 장군의 발걸음이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이 장면은 해석될 수도 있다. 조선의 엘리트 출신인 그가 동학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동학사상이 천출들에 국한된 반란이 아닌 당시에 이미 전 사회계층으로 공감대가 확산된 조선의 민주주의 정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안중근 장군의 정신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나 최근 빛의 혁명을 관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유산이다.


동학운동의 정신을 담은 영화 <하얼빈>의 얼어붙은 호수 위의 균열 이미지는 오늘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윤석열의 탄핵을 외치던 수많은 민주시민들이 흔들던 그 야광봉까지 연상되어 확장된 의미를 웅변적으로 전달한다. 조선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반드시 해방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인내해 온 우리 민족이 얻은 필연적이고 정당한 결실이다. 김형석 관장은 선물이라는 말로 조선의 독립이 우연이었다는 망언을 포장하였기에 모욕적이고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자에게 하나님나라의 유업'(마 5:10)을 상급으로 주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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