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뉴욕선언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 이행 채택
"그가 뭇 나라들 사이에 재판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단하시리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4
오늘 뉴스에서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 이행 결의 채택에 142개국이 찬성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BBC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공식적으로 지지해 온 입장을 다시 한번 더 확인 주었다. 무엇보다 이에 대한 유럽의 변화가 눈여겨볼 만한데 특히 그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안보를 대전제로 하면서 조금은 늘 애매한 입장을 취해 온 독일의 전향이 놀랍다. 이 뉴스는 그냥 지나칠 뉴스가 아니다.
독일의 지방선거에서 나치 전신이었던 극우정당이 승리할 정도로 유럽에서의 극우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극우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한 한미일 극우 결집 현상으로 세계적인 극우 추세는 그 다양성과 속도에서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게 되었다. 모든 전쟁은 특정 전쟁광인 지도자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지만 분열과 분쟁 분위기 형성이 국민들 사이에 일어나야 전쟁 빌런들의 선동이 가능한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현 극우확산은 절대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게 되었다.
이 번 뉴욕선언이 이스라엘과 연결된 세계 극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류 어젠다가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것에 자극을 받아 극우들이 결집할지 아니면 고립이 될지 주목해야 하는 뉴스이다. 이 번 뉴욕 선언은 세계 정세의 분기점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있을 한국의 지방선거 역시 그 어떤 선거보다 시기적으로 중요한 선거이다. 극우가 대구 지역으로 고립되어 버릴 것이라는 주류 정치평론가들의 예측이 있다. 사실 윤석열 당선으로부터 지금까지 암약해 온 분열세력들의 실체들이 하나둘씩 점진적으로 들추어지면서 타깃팅이 되어 오고 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아직도 내란 종식이 진행 중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극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이 현재로서는 유일하다. 세계정세의 흐름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이런 현상은 어쩌면 새로운 해법이라는 길을 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한국의 대처법이 그 신호탄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극우확산에 대처해 나가는 것과 세계가 골머리를 썩고 있는 미국과의 관세문제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긴 샅바 싸움을 하며 해법을 찾아내 가는 과정이 세계 공통의 문제에 대한 해법의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에 적극적인 찬성을 한 유럽 국가들에서 극우들은 분개할 것이고 본색을 더 두드러지게 내 보일 것이다. 그들이 당장은 결집하겠지만 20세기와는 인권에 대한 인식도 다르고 세계정세도 변화된 지금, 그들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그들의 결집이 전쟁까지 이어질 도화선이 될 수 있을까? 특히 20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K-컬처에서 K-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경제력 10위권에 국방력 5위인 코리아의 부상은 21세기의 변화된 환경에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역할은 중대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현시점까지 사실상 극우들의 주장은 감성에 영역까지 크게 영향을 끼치며 설득력까지 담보하면서 확산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바라기는 한국 지방선거 이후에 대한 예측과 같이 이 번 뉴욕선언이 준동하고 확산하는 극우확산의 기세를 조금은 진화하여 힘의 균형을 잡게 되고 전쟁위기 해소에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은 단순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닌 인권, 난민, 종교, 국제관계 등 모든 글로벌 이슈가 응집된 사안이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의 이 모든 문제는 마치 한국의 친일문제와 같이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은 팔레스타인 지역 분쟁이 해결점을 보면서 지구 전체적으로 조금은 안정된 상황을 이끄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위기 극복이 마치 나비효과와 같이 세계를 돌아 다시 한반도 정세 안정과 남북관계에도 선한 영향이 미치게 되면 좋겠다. 그리고 독일 패전 이후 독일교회도 스스로를 돌아보았듯 한국교회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때가 오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