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업이 끝나면, 나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닙니다.

주저리주저리

by 장교주

“왜 벌써 은퇴하세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선생님 수업, 한 번만 더 듣고 싶어요.”

“졸업한 제자를 위해 일본어 수업, 딱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오래전 졸업한 제자들과 술 한 잔 하던 자리였습니다.

내가 명예퇴직한다는 말을 듣고, 아쉬운 마음에 꺼낸 부탁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술김에 하는 소리겠지.’라고 생각하며 저도 대충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한번 고민해 보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오래된 장면들이 폭풍처럼 지나갔습니다. 처음 임용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던 순간. 아이들과 부딪히며 지지고 볶았던 나날들. 집에 가서도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괜히 혼자 웃었던 밤들. 그 시절엔 학생들이 제 수업에 뜨겁게 반응해 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다 내 편 같았습니다. 마치 훌륭한 교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영화_죽은시인의_사회.jpeg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오는데, 가슴이 예전만큼 뛰지 않았습니다.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착하고, 열심히 반응해 주는 학생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자리 잡았습니다. 예전처럼 수업이 ‘행복’으로 남는 날이 확실히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은퇴합니다. 그 이유를 저 자신에게도 여러 번 물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그래서인지 졸업한 제자의 그 한 마디는 제 마음을 다시 흔들어 놓았습니다. 고맙고, 기특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조금씩 뜨거워졌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그래,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 준 제자들 앞에서

진짜 마지막 수업을 한 번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초대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연락이 닿는 졸업생들에게 조심스럽게 보냈습니다. 고별 수업일은 종업식이 있는 날. 모든 선생님들이 퇴근하고 난 저녁 6시. 그리고 그날은 제가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직장인들에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을 텐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제자들이 와 주었습니다. 오지 못한 제자들도 많았습니다. 일정이 안 맞아 아쉽다며 연락을 준 제자들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고마웠습니다.

마지막_수업_초대장-홈커밍데이_포스터.png

참 이상합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이렇게 진지하게 만듭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설렘’. 수업을 준비하면서 저는 오래전의 저로 잠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옛날식으로 책상 분단을 맞추고, 포스터를 만들고, 수업 구성을 고민했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감이었습니다.


‘아~ 내가 이걸 좋아했었지.’


수업이 누군가에겐 일이지만, 저에겐 한때, 삶의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민이 생겼습니다.


‘대체 마지막 수업 딱 한 시간을 뭘로 채울까?’


일본어 문법만 하기엔 허전하고, 제 교직 인생 회고만 하기엔 꼰대같고 어색했습니다. 그래서 31년 동안, 제가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했던 것, 알려주려고 노력했던 것, 그걸 하나로 묶어서 마지막 수업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세 개의 트랙으로 정했습니다.

1.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생활 속 일본어문장 4개 오.아.시.스

오: 오네가이시마스(おねがいします)

아: 아리가토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시: 시츠레이시마스(しつれいします)

스: 스미마셍(すみません)


2. 일본 문화와 우리 문화의 비교

우리가 하지 않는 일본인만의 독특한 행동양식과 그 이유


3. 인생과 철학

이찌고이찌에(いちごいちえ)와 낭만에 대하여


이 세 개의 트랙이 결국 어디를 향했는지,

교실에서의 수업이 어떻게 인생으로 연결되는지 제자들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들 자체가 제 수업의 증인이요, 삶에 적용해 준 이들이니까요.


제자들이 한 두명씩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반갑다 못해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안아 주고, 악수하고, 이름을 부르며 출석체크를 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제자들은 이제 대부분 40대 중반. 누군가는 가정을 이뤘고, 누군가는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였고, 누군가는 회사대표, 의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보다 머리카락이 더 빠진 제자도 있었고, 저보다 흰머리가 더 많은 녀석도 있었습니다. 제 연봉의 몇 배를 더 버는 자영업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든, 어떤 성취를 이루었든 상관없었습니다. 제 눈에는 그저 그때 그 교실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영화_홀랜드오퍼스.jpeg 영화 <홀랜드 오퍼스>

50분의 고별 수업, 그리고 폭발한 반응. 혹시 어색하면 어쩌나, 분위기가 처지면 어쩌나 조금 걱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기우였습니다. 웃고, 고개 끄덕이고, 추억을 꺼내며 맞장구치고, 때로는 눈가가 젖어 있었습니다. 어떤 여 제자는 미리 눈물을 닦기 위해 화장지를 많이 챙겨왔다고도 했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아마 제가 수업을 엉망으로 해도 그렇게 해 주었을 겁니다.ㅋㅋ

수업 중에 순간순간 저는 느꼈습니다.


‘아… 이건 수업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을 확인하는 자리구나.’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그 교실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이어진 마음의 전달식. 꽃다발, 감사패, 동료 교사들의 정성어린 케이크까지… 그들의 마음이 한꺼번에 제게로 걸어오는 순간이었습니다. 기념 촬영을 끝으로 마침내 마지막 고별 수업은 끝났습니다.

31년의 교직 생활...

대단원의 마지막 페이지가 조용히 덮이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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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교사’라는 이름은 내려놓지만, 제자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선생님’이라는 자리로 남게 되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고별 수업 때 했던 저의 마지막 멘트.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는 다시 길을 나섭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낭만을 찾아 떠난다.

언젠가 낭만의 그 길 위에서 우리 벗으로 다시 만나자.”

낭만의_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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