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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덕 Dec 11. 2023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

이성과 의지와 정욕의 열띤 토론을 기록할 공간


세상엔 이해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


당장 이 글의 제목마저도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이다.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끊임없이 추궁하고 귀납함으로써 자신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자아실현의 욕구. 인간만이 가능한, 인간의 최상위 욕구이다.


인간은 끝없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이성의 유무이다. 이성 덕분에 인류가 문명을 세우고 발전할 수 있었던 지만, 인간의 이성이 인간 스스로를 비참한 악마로 만들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반성하고, 인간의 언어로 의미와 개념을 담아 추상할 수 있다.  

'인과 관계'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인간의 자아실현 욕구가 만들어낸 추상 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꽤나 이러한 인과 관계들에 집착하고 지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해하려는 마음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이런 잡생각들을 끄적이고 기록할 공간이 필요했다.


이성과 의지와 정욕은 항상 싸우고 있다. 나의 내면 속에서도,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이방인>의 교훈이 알려주듯, 인간의 이성이 인간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든다.


시작은 아마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끊임없는 사색과 후회, 자책, 체념, 그리고 반성의 과정들과, 더 나은 내가 되려 재정립하고 노력하는 생각들, 그리고 실행하려 노력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러한 과정에 끝은 없다는 사실에 다시 좌절하는 나 자신. 이러한 과정들이 나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지만,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생의 모든 면이 어렵지만, 나는 유독 '사랑' 이 어렵다, 가장 어렵다. 욕망의 본질인 이 추상적이고 모순적인, 고통스럽고 역겨운,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개념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더 나은 자신이 되려 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이해와 의미에 대한 구절


어쩌면 '끝'이라는 것이 없는 추상의 개념 속에서 '끝'을 추구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끝이 없는 바다를 헤엄쳐 건너가려 하는 것과 같은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헤엄을 멈추고 바다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잡생각들을 끄적일 공간이 필요했다.


멈춤은 단지 유예된 상황이다.


이런 삶이라는 시행착오의 수레바퀴 속에, 너무 절망만이 가득하지 않기 위해, 도움을 주고 교훈을 주는 존재들이 있다. 나에게는 주로 '책'이 그렇다.


교훈들을 까먹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록'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이 글은 사실 나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고르지 않은 생각의 과정들을 공유함으로써 누군가가 공감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거나, 나도 다른 시점의 피드백을 받으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인터넷의 순기능 아닌가, 나 자신을 꽤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커가며 깨달은 바가 있다면, 삶을 살아가기 바쁜 우리는 사실 타인에게 거의 관심이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그들에게는 부끄러울 게 없다 생각했다.  




어쨌든, 이런 잡생각들을 끄적일 공간이 필요했다.


건축을 공부하며 수많은 건축들과 현상들을 분석했지만, 정작 나 자신만은 분석하지 않았다.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한 후, 살면서 거의 처음으로 '여유'라는 게 무엇인지 느낀 것 같다. 새삼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살았구나 싶었다. 학업, 인간관계 등 인생의 모든 면에서 잘못된 게 있으면, 그냥 그런 거였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 아쉽게 된 거지" 주의였다.


옳지 않은 태도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주의는 진통제와 같다. 근본적인 병을 해결하지 못한다.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돼있던 내면의 문제들은 하나둘 엉켜 곪아 가고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엉켜있던 문제(주로 학업 등)들의 매듭만 풀기에 급급했고. 그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얕은 쾌락(술, 담배, 게임, 이성과의 관계 등)들만 추구하게 되었던 것 같다. 가장 심각한 점은, 이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복용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본다. 또 어떤 사람은 밤새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
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비참함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도파민 네이션>
인생은 엉켜있는 실들과 같다.


휴학을 하고 여유가 생기니 책을 읽고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됐고, 못 보고 있던 매듭들을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늦게 깨달은 것이 아쉽지만, 바쁜 삶으로 돌아가면 다시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려, 망각하지 않으려 나는 기록하기를 시작했다.




내가 수행했던 건축과 과제 중에, 점수를 받기에 급급하지 않고 이런 여유 있는 사고방식으로 마주했으면 더 좋았을, 주제는 흥미롭지만 그 과제를 수행하는 내가 흥미롭지 못했던 그런 과제들이 있다.


돌아보면,  3,4학년 때 성적을 위해 경쟁자들에게 쫓기며 습득한 얄팍한 보여주기식의 지식들 보다, 1,2학년 때 본인의 무지를 알고, 오로지 삶의 경험과 주체성에 의존해 수행했던 과제들이 더 가식적이지 않은 감동을 준다.


예술이 정직한 이유인 것 같다.


군 생활 중 나의 이런 건축적 생각들과 작품들도 돌아보며 나 자신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지금까지의 프로젝트 엿보기!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에는 기록의 소중함을 몰랐던 게 아쉽다.


어쨌든, 이 블로그에서 주로 책을 통해 내 생각을 기록하고, 나의 작업들과 생각들을 돌아보며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발전하려 노력하고, 가끔 일상적인 기록도 남기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려 해볼 것이다.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모두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게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좌절하며 살아가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기록해가며 나름의 해답을 찾으려 노력해 볼 생각이다.


이상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였다.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이 사소한 행동의 이유를 분석하고 서술하는 데만 해도 이리 많은 내용이 필요한 게 참 신기하다. 언제쯤 '인과관계'의 지배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언젠가 이유 없이 행동을 저지르고 그 행동에 후회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인간의 당연한 정욕이니 이에 납득하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평생.


이런 예고 없이 머릿속에 찾아오는 생각들은 불청객이지만 싫지 않다, 반갑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지 않는가.


아무튼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상 여러분은 나의 이성과 의지와 정욕이 열띠게 토론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끝.


내가 참 좋아하는 구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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