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그날의 밤

영화 ‘기억의 밤’ 리뷰

by 안녕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형이 어느 날 형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다른 방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내 연인, 내 가족, 내 친구. 누구든 가능하다. 소름 끼치는 이 가정은 영화 ‘기억의 밤’ 속 가장 중요한 스토리 라인으로 작용한다. 가장 익숙한 나의 가족이 어느 날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 이보다 겁나는 상황이 있을까.
‘기억의 밤’ 공식 포스터


비 오는 날 괴한에게 납치당한 후 19일 만에 돌아온 형 유석(김무열). 형은 19일 동안의 기억을 모두 잃었다고 말하고, 그 뒤로 동생 진석(강하늘)이 보는 형은 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형이 납치된 19일간의 기억이 중심이 되지 않는다. 진석과 유석, 그리고 가족 전체의 기억이 포인트다. 누구의 기억이 진실이며 누구의 기억이 거짓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이 안에서 가족은 물론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유석은 뭔가 다르다. 하지만 다르지 않다. 진석은 이를 단번에 알지만 아빠, 엄마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눈치채지 못한다. 반대쪽 다리를 절기도 하고, 밤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외출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집, 꼭꼭 잠긴 방 안에선 뭔가 나올 것만 같다.


어딘가 불안한 주인공 진석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은 색다른 공포를 체험하게 된다. 내가 아는 것이 낯설다는 알지 못하는 감정에 대한 공포감과 동시에 의문이 든다.


‘내가 왜 이걸 무서워하고 있지?’



‘기억의 밤’ 강하늘 김무열


드라마 ‘싸인’을 연출하고 영화 ‘끝까지 간다’ 각색 작업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만들지 않던 장항준 감독이 신작 ‘기억의 밤’으로 돌아왔다. ‘싸인’ ‘유령’ ‘쓰리데이즈’ ‘시그널’ 등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의 남편이기도 한 그는 스릴러 장르로 관객들과 인사할 준비를 마쳤다.


‘기억의 밤’은 아주 사소한 말이 발단이 되어 시작됐다. 어느 술자리에서 “집을 나갔다 돌아온 형이 우리 형 같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일행의 말을 들은 장항준 감독이 사소한 의문을 가지면서 2014년 겨울,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했다. 아주 간단하다. 내 기억을 의심하고, 내 가족의 기억을 의심하고, 이 주변 모든 것들을 의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인간에게는 크나큰 공포를 선사한다.


관객이 느끼는 공포를 바탕으로 의심의 씨앗을 촘촘한 이야기적 구성으로 꾸며 넣고, 이후 그 의심을 해소시켜 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명확한 포인트는 사람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이며 내가 만들어낸 기억 속에서 산다는 점이다. 충격적인 장면은 뇌에서 그걸 잊길 바라고, 행복한 기억은 극대화해 생각한다. 이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가장 무서운 방법이기도 하다.


속도감 있는 이야기보단 차근히 풀어내는 장항준 감독만의 전개 방식은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1997년 배경의 브라운 톤의 집안 가구와 앤티크 한 주변 무드,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진석의 모습까지 과거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놨다.


공포물이 아니다. 언뜻 공포, 스릴러처럼 느껴지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복선은 물론 추리가 가능한 여러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추리물일까? 그것 또한 아니다. 지구 상 최상위 포식자라 불리는 인간이란 생명체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그것들이 저장되는 그 기억 속의 모순. 거기서 발견되는 또 다른 인간의 군상이 보는 이들의 살에 말 그대로 ‘소름’이 돋게 만든다.


‘기억의 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는 연결고리 속에서 작동한다. ‘내가 아는 형이 형이 아니라면?’ ‘누군가 내 기억을 조작한 거라면?’ ‘내가 믿는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면?’이라는 소름 돋는 가정들이 ‘기억’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묶여 꼬인 실타래처럼 길게 이어진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배경은 ‘비 오는 날’이다. 비가 와야만 가능한 이 시나리오는 감독과 배우들을 고생시켰지만, 끝내 임팩트 있는 장면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은 반전이다. 아니, 가히 충격적이다. 물론, 결말은 누군가에겐 실망일 수도, 누군가에겐 해피엔딩일 수도 있다.


선택은 관객의 자유니까.


강하늘, 김무열 주연, 11월 29일 개봉, 러닝타임 109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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