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진부한 감정

이도우 장편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리뷰

by 안녕혜
10370384(2).jpg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그럴 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사랑의 묵직함. 사람의 마음이 가지는 가장 무거운 감정이자 가장 가벼운 감정인 ‘사랑’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다만 내가 가진 마음이 가는 그 길을 묵묵히 그와 함께 걸어가는 것일 뿐이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이건 PD와 진솔 작가의 ‘선입견’으로 시작된다. 이건 PD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접한 진솔은 그를 한 마디로 ‘밥맛’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PD는 생각보다 솔직하고, 진솔했으며 무덤덤한 듯 편안하게 그녀를 대했다.


이렇듯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랑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오해로 시작된 사이는 쌓이는 정과 애증(?)과도 비슷한 단계를 거쳐 “이상하게 보고 싶다”라는 감정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건과 진솔은 각자 자신의 감정을 등한시한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고, 주변에서 하는 말과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음의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내 마음이 더 무겁다, 힘들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은 자기중심적이다. 모두 내가 가진 사랑이 가장 크고, 내가 가진 슬픔이 가장 슬프다. 하지만 조금 바꿔서,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도 똑같은 사람이다. 슬프고, 복잡하며, 혼란스럽다. 상대를 향해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이든 처음이기 때문에 힘이 들 것이다.


건과 진솔은 일명 ‘썸’이라 불리는 기간을 거친다. 이 기간 동안 진솔은 건을 향해 애달프고, 애틋하며, 사랑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알지 않아도 될 비밀들을 알게 되고,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사랑의 군상을 확인하게 된다.




사실 모두의 사랑은 비슷하다. 같은 이유로 만나고, 헤어지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과정의 크기가 달라진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그 사람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감정의 진폭을 서로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가 사랑의 최종 목적지인 헤어짐과 결혼 사이의 미묘한 당락을 확정 짓는다.


또 한 가지. 커플들이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 소설 속 건과 진솔은 먼저 다가갈 수 없어한다. 자신 때문에 아팠을, 혹은 지금도 아파하고 있을 상대를 생각하며 한 걸음, 그 이상의 거리를 유지한다. 결국 서로에게 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방향을 택했고, 진심으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속마음을 내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기 창피한 나의 가장 낮은 부분을 말이다.


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사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둔다는 것은 용기를 낼 수 없다는 뜻이며 그것만큼 내 사랑의 깊이가 깊지 않다는 뜻도 된다. 이것은 지극이 쓰는 필자의 생각이지만, 나 때문에 아파하는 그 혹은 그녀를 위해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용기를 내는 것이 그녀 혹은 그에게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될 수 없지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다. 조금만 더 다가간다면, 그렇게 내 사랑에 솔직해진다면 계속해서 거리를 유지하며 방어막을 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에게 여유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의 과거와 아픔을 무겁게 생각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말자.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용기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가장 잘 알지만 검은 속은 모르는 ‘속 빈 강정’이 되고 말 것이니.




소심한 성격의 여자 주인공 진솔과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건은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야기의 곡선은 그를 따라 가파르지 않고 천천히 흘러간다. 인생의 전부는 물론 사랑이 아니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 건은 그 생각을 누구보다 굳게 믿고 따르는 사람이다. 그는 진솔을 만나고 사랑하며 서서히 변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인생의 전부가 사랑이 될 수는 없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내’ 인생의 전부는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단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연인과 거리를 두고 도망가지 말라고.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표현하고, 끝까지 쫓아가 내 사랑을 잡으라고. 도망갈까, 직진할까 고민하는 그 찰나의 순간, 사랑을 이어주는 파랑새는 날아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우리는 말한다. 사랑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뺏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오길 기다리는 거니까.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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