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군이 될 수 있었던 왕

이향

by 은빛바다


조선 제 5대 왕. 문종 (1414년~1452년 / 재위:1450년~1452년)



문종은 8세에 세자로 즉위했고, 29년 동안 세자 교육을 받습니다.


그 동안 세종을 잘 보좌했습니다. 측우기의 발명은 문종이 세자 시절에 세종을 도와 만들었습니다. 다른 동생들에 비해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문종은 훗날 계유정난을 일으키는 수양대군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이정(당태종 시기에 최강 명장)보다 낫고 나는 아마 제갈량에 비교하면 아주 약간 차이가 날 것 같다.”


이에 수양대군이 문종에게 아부하는 듯한 대답을 합니다.


“제갈량 따위를 어떻게 형님(문종)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수양대군조차 문종에게 고개를 숙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대화입니다.


1445년 세종이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깁니다. 8년 동안 문종은 조정을 잘 이끌었고, 그 동안 세종은 발명에 집중합니다.



● 문종은 6품 관리까지 왕을 직접 만나는 윤대를 허락합니다.


● 고조선에서 조선 말까지 이르는 전쟁사를 정리하는 <동국병감>을 편찬합니다.


● 병법에도 관심이 많아 대규모 병력을 운영하는 <오위진법>을 만듭니다. 실전에서 활용이 가능한 전투법과 전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적은 책입니다.


● 신기전을 개량한 ‘문종화차’를 만듭니다.



문종은 효자였습니다. 세종이 앵두를 좋아하자 문종은 궁궐에 앵두나무를 심고 가꿨습니다. 그 앵두를 세종에게 바치자, 세종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임금의 성품이 지극히 효성이 있어 양궁에 조금이라도 편안치 못한 점이 있으면 몸소 약 시중을 들어서 잘 때도 띠를 풀지 않으시고 근심하는 빛이 얼굴에 나타났다. 어머니 소헌왕후가 병환이 났을 적에 사탕을 맛보려고 했는데, 후일에 어떤 사람이 이를 올리는 이가 있으니, 임금이 이를 보시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휘덕전에 바치었다. 세종이 병환이 나자 근심하고 애를 써서 그것이 병이 되었으며, 상을 당해서는 너무 슬퍼해 몸이 바싹 여위셨다. 매양 삭망절제에는 술잔과 폐백을 드리고는 매우 슬퍼서 눈물이 줄줄 흐르니, 측근의 신하들은 능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 <문종실록> 13권. 문종 2년 5월 14일


1446년 어머니 소현왕후가 죽자 문종은 3년상을 치릅니다. 묘지 옆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지내는데 보통 형식으로 치르지만 문종은 자신이 직접 다 실천합니다. 몸이 서서히 약해집니다.


소현왕후의 3년상을 다 치르자 곧이어 세종이 죽습니다.


세종의 3년상을 치르는 도중에 문종은 과로로 눈을 감습니다. 2년 동안의 짧은 재위 기간이었습니다.


문종의 부인들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첫째 부인인 휘빈 김씨는 문종이 자신을 찾지 않자 해괴한 주술을 끌어들입니다.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신발 뒷굽을 태워 몸에 지닙니다. 교미하는 뱀의 땀을 닦은 수건으로 몸을 문지릅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세종은 그녀를 궁궐 밖으로 내쫓습니다.


둘째 부인인 순빈 봉씨는 행동이 거칠었습니다. 세종이 읽으라고 준 ‘열녀전’을 던져버립니다.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립니다. 심지어는 소쌍이라는 불리는 궁녀와 동성애까지 벌입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세종은 역시 그녀도 궁궐 밖으로 내쫓습니다.


세 번째 부인인 권씨는 단종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일찍 죽고 맙니다. 이후로 문종은 더 이상 부인을 들이지 않습니다.


이 점이 안타깝습니다.


문종은 죽을 때 신임이 두터웠던 좌의정 김종서에게 단종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지만, 김종서는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수양대군의 철퇴를 맞고 죽습니다.


단종의 배경이 될 어머니나 할머니가 있었으면 단종은 어린 나이에 큰 시련은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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