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다툼의 희생자가 된 어린 왕

이홍휘

by 은빛바다


조선 제 6대 왕. 단종 (1441년~1457년 / 재위:1452년~1455년)



단종은 12세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런 경우 수렴청정을 하지만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는 단종은 낳은 뒤 사흘 만에 죽습니다. (수렴청정 - 어린 왕이 즉위하였을 때 왕실의 가장 어른인 대비가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정치제도)


어린 단종은 어떻게 정사를 돌봐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대신에게 의지해야 했지요. 경연에서 관료들이 의견을 제시하면 단종은 이런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대신들과 의논을 해보겠소.”


“그것은 이미 대신과 결정을 내린 사안이라 바꿀 수 없소.”


대표적으로 ‘황표정사’가 있습니다. 보통 관료를 선출할 경우에 부서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면 왕이 그중 한 명을 고르는 방식이었는데요. 어린 단종은 관료를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의정부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면서 한 명을 노란색으로 표시하면 단종은 그 사람을 관료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왕이 단순한 결재 도구가 된 것이지요.


수양대군은 단종의 삼촌입니다.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이지요.


그는 김종서가 안평대군(세종의 셋째 아들)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할 거라는 역모의 구실로 계유정난(1453년)을 일으킵니다.


김종서를 살해하고, 책사 한명회를 통해 단종의 지지 세력을 제거합니다.


그때 한명회가 살생부를 쥐고 있었습니다. 궁궐로 들어오는 대신이나 관리가 살생부 명단에 적혀 있으면 한명회의 고갯짓에 따라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관상.PNG

♦ 단종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 <관상>(2013년). 계유정난으로 드러난 잔인하고 안타까운 권력.


단종은 계유정난이 1년 7개월 지난 뒤 직접 옥새를 수양대군에게 주면서 양위합니다.


단종이 환관 전균을 시켜 우의정 한확 등에게 전교하기를 “내가 어려서 안팎의 일을 알지 못하여 이제 장차 대임을 영의정(수양대군)에게 전하려 하노라”하였다.

- 연려실기술 제 4권. 단종조고사 본말


당시 옥새를 전달한 신하가 성삼문입니다.


그는 자책을 견딜 수 없어서 박팽년과 함께 경회루 연못에 빠져 죽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훗날을 도모하고 문종에게 총애를 받았던 집현전 학자와 1455년 10월 단종복위운동이 일으킵니다.


1456년 6월 창덕궁에서 열리는 명나라 사신 초대연에서 별운검(임금의 신변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무신)을 통해 세조를 제거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연회장을 둘러본 한명회가 갑자기 별운검이 세울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아 거사는 실패합니다.


이후 밀고자로 인해 단종복위운동의 연류자는 처참하게 사형을 당합니다. 이중 이개, 하위지, 유성원,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은 왕에게 충절이 지킨 신하로 후대까지 사육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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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절사>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단종은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당합니다.


결국 1457년 세조가 사약을 내립니다. 삼촌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어린 조카를 죽인 것입니다.


당시 단종의 나이가 17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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