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을 일으키고
조카에게 사약을 내린 왕

이유

by 은빛바다


조선 제 7대 왕. 세조 (1417년~1468년 / 재위:1455년~1468년)



세조는 계유정난을 통해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왕에 오릅니다.


그 후 조선에는 많은 난언(亂言, 아무 근거 없는 뜬소문으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말)에 일어납니다. 이는 세조가 반란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권력을 갖고 갔기에 이에 대한 반발이 드러난 것입니다.


더불어 백성에게 그릇된 가치관이 생깁니다. ‘수양대군이 부당한 방법으로 왕이 되었으니 나도 다른 사람을 모함해서 이익을 취해도 되잖아.’ 이런 식으로 말이죠.


- 의금부에서 ‘난언’을 한 박신 주명녕 등을 교형에 처할 것을 아뢰다. (세조 5년 8월 27일)

- 개성부 승효사 중 해산이 승려 보문 명신 설휘 등의 ‘난언’을 고발하다. (세조 1년 11월 16일)

- ‘난언’한 최익겸을 체포하여 의금부에 가두다. (세조 6년 9월 22일)

- 사노 상좌가 ‘난언’을 승정원에 고하다. (세조 13년 8월 2일)


세조는 계유정난에 동참한 한명회, 정인지, 한확 같은 공신에게 벼슬을 주고 그들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이들의 세력이 커지자 세조는 새로운 신하를 뽑아 견제하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많은 인재가 죽은 상황이었습니다.


1467년 5월, 세조의 중앙집권 정책으로 함경도 일대의 특혜가 없어지자 이시애가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세조는 신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반란을 진압한 조카 구성군은 영의정으로, 남이를 병조판서로 임명합니다. 기존 공신에 대응하려는 세력으로 만들려는 의도였지요.


그뿐 아니라 세조는 과거 제도 중 하나인 ‘별시’를 임의로 열어 공평하지 않게 관직으로 등용합니다.


정국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세조는 정통성을 잃은 왕권을 강화하고 조선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합니다.


● 가장 큰 업적은 <경국대전> 편찬입니다. 경국대전은 조선왕조 건국 전후부터 1484년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간의 왕명, 교지, 조례 중 영구히 준수할 것을 모아 엮은 법전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종 15년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동국통감>을 편찬합니다.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 역사서인데 역시 성종 때 완성됩니다.


‘동국지도’를 완성합니다. 만주가 그려진 우리나라의 최초의 실측 지도입니다.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태종이 실시한 ‘6조 직계제’를 채용합니다.


● 1466년 직전법을 실시합니다. 조선시대는 관료에게 월급 대신에 땅을 지급했습니다. 그 땅을 백성이 경작하고 관료는 세금 받는 권리를 부여했지요. 문제는 관료들이 은퇴하고 나서도 계속 세금을 받기 위해 땅을 돌려주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세조는 현직 관리에게만 땅에 대한 세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습니다.

● 역시 태종이 실시했던 호패법을 강화합니다. 이것을 통해 인구를 파악하고 그만큼 세금도 명확하게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적극적인 사민정책을 펼칩니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주민들을 사람이 없는 함경도 지역으로 이주하는 정책입니다.


세조는 반란으로 왕이 되었지만 조선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세조의 말년은 불행했습니다.


먼저 세조의 아끼던 장남인 의경세자가 왕위를 받지 못하고 19세로 요절합니다. 그의 동생인 해양대군이 조선 8대 왕이 됩니다. 바로 ‘예종’이지요.


또한 세조는 단종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자신에게 침 뱉는 꿈을 꾼 뒤에 피부병이 생깁니다. 밤마다 그는 현덕왕후의 원혼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야사에 의하면 의경세자의 요절 역시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 세조는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겠지요. 세조는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에 유명한 사찰을 돌아다니며 불공을 드립니다.


세조는 불교에 많이 의지합니다. 아마 유교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왕위에 올랐기에 불교를 정신적인 기반으로 삼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세조는 예종에게 선위한 다음 날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세조.PNG


♦ 세조의 어진 초본 (작품을 구상하면서 그리는 밑그림, 기초 작업물).

조카에 사약을 내린 비정한 성품과 달리 의외로 부드러운 인상입니다.

조선왕조의 어진 정품은 '태조'와 '인조'뿐입니다.

나머지는 복사본이나 모조품입니다. 많은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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