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군

이융

by 은빛바다


조선 제 10대 왕. 연산군 (1476년~1506년 / 재위:1494년~1506년)



연산군은 두 번의 사화를 일으킵니다. 사(士: 선비) 화(禍: 재난)는 선비가 재난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주로 사림파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무오사화’(1498년)는 성종실록을 작성하던 중 선왕 세조를 비난하는 글이 드러납니다.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인데, 훈구파는 이것을 연산군에게 고합니다. 연산군은 이와 관련된 사림파를 숙청하고 유배를 보냅니다.


심지어는 6년 전에 죽은 김종직의 무덤을 파내어 목을 잘라버립니다. 이를 부관참시라고 합니다.


‘갑자사화’(1504년)는 폐비 윤씨 사건을 꺼내 관련된 관료와 왕족까지 죽여버린 사건입니다.


왕이 자기 어머니를 죽인 자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하는데 감히 말릴 신하는 없었습니다. 성종의 후궁과 이복동생까지 잔인하게 죽입니다. 그리고 칼을 들고 할머니인 인수대비를 찾아가 행패를 부립니다.


이번에는 훈구파의 관료들이 숙청을 당합니다.


세조 시절부터 큰 권력을 누리던 한명회의 무덤을 파헤쳐 역시 부관참시합니다.


이렇게 두 번의 사화를 거치니 왕의 권력을 견제하는 세력은 없어지고 연산군은 향락에 빠져 방탕한 생활에 국정은 돌보지 않습니다.




● 사냥을 좋아하는 연산군은 아예 궁궐 주위를 사냥터로 만들어 버립니다.


도성 사방에 100리(40km)를 한계로 모두 금표를 세워 그 안에 있는 주현과 군읍을 폐지하고 주민을 철거시킨 다음 사냥터로 삼고 수백리를 풀밭으로 만들어 금수를 기르는 마당으로 삼았고 여기에 들어가는 자는 목을 베였다.

- 연산군일기


● 기생을 수천명이나 두었습니다. 기생은 흥청 300명, 운평 1000명, 광희 1000명, 이렇게 3분류 했는데, 가장 미모가 빼어난 흥청에게는 가족이 한양에서 살 수 있도록 집까지 주었습니다. 이 많은 기생을 뽑기 위하여 채홍사라는 기관을 만들었고, 채홍사는 권세가 워낙 강해서 지방으로 내려가면 그곳 관리가 나와 벌벌 떨면서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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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간신> (2015년). 채홍사를 배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연산군의 광기를 드러낸 김강우의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 성종이 9000번 넘게 참석한 경연을 폐지하였습니다.


● 당시 언론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사간원 홍문관을 폐지하고, 사헌부도 축소했습니다. 자신에게 거슬리는 말은 듣지 않겠다는 의도이죠.


● 성균관의 유생 활동도 금지했습니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거친 신하들은 왕의 권력이 두려워 감히 간언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처선이라는 늙은 내시가 연산군의 연회 중에 목숨을 걸고 간언을 올립니다.


늙은 놈(김처선)이 네 분의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를 대강 통했는데, 고금을 통틀어 상감과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 연려실기술


연산군은 김처선에게 활을 쏘고 팔과 다리를 잘라 죽입니다.


이처럼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반발하는 세력이 모이게 되었고, 그들은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냅니다. 연산군도 이 사실을 짐작했는지 폐위되기 3개월 전 연회장에서 이런 시를 짓습니다.


- 명예를 구하느라 고생하지 말고 모름지기 자주 술에 취하여라. 이 세상 한번 떠나면 황천객을 면치 어렵나니.


반란군에는 훈구파 사림파 가리지 않고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이 궁궐로 들이닥치자 군사와 내시는 도망치고 연산군만 혼자 남았습니다. 전투 한번 치르지 않고 반란에 성공합니다.


궁궐을 포위한 반란군은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연산군을 설득합니다.


이에 연산군은 “내 죄가 중하여 결국 이리될 줄 알았다. 좋을 대로 하여라.”라고 말하며 순순히 옥새를 내줍니다.


연산군은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얼마 뒤 병으로 사망하였는데, 반란군이 독살하였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뒷받침될 증거는 없습니다.


그가 유언으로 남긴 말은 간단했습니다. “아내가 보고 싶다…….”


기생 수천 명을 거느렸던 왕의 쓸쓸한 최후였지요.


연산군의 아들인 폐세자 이황과 창녕대군도 유배되어 결국 사약을 받습니다. 그들의 나이가 고작 10세 7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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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 <왕의 남자>(2002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천만을 넘은 영화입니다. 왕과 광대라는 반대의 두 인물을 통해 권력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당시에 동성애라는 파격적인 소재도 화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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