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
조선 제 11대 왕 중종 (1488년~1544년 / 재위:1506년~1544년)
연산군의 이복동생입니다. 세자 수업을 받지도 않은 채 갑자기 ‘중종반정’을 통해 왕이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권 초기에는 반란을 일으킨 공신에게 의존해야 했습니다. 관료들이 의견을 올리면 중종은 “경의 뜻대로 하시오.”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중종반정에서 연산군과 함께 처형된 인물이 신수근입니다. 이 신수근의 딸이 바로 중종의 아내인 신씨였습니다. 신하들은 역적의 딸이 왕비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강제로 신씨를 궁궐에서 내쫓습니다.
야사에 의하면, 중종은 신씨를 그리워하며 궁궐에서 인왕산을 바라보았고, 그 사실을 안 신씨는 인왕산 정상 붉은색 치마를 걸쳐놓습니다. 이게 인왕산 치마바위의 유래입니다.
<국조기사>에 보면 신씨가 현명한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이 중종을 보호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옵니다. 아무 사실도 모르는 중종은 연산군이 자기를 죽이러 군사를 보낸 줄 알고 방 안에서 벌벌 떱니다.
신씨가 “만일 말머리가 집 쪽으로 향하면 당신을 죽이러 온 것이고, 만일 말머리가 바깥으로 향하면 당신을 보호하러 온 것이니 확인을 해보세요.”라고 조언합니다.
하인이 문틈으로 확인해보니 말머리가 바깥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제야 중종이 안심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공신의 눈치 보며 정국을 운영하던 중종은 사림파의 조광조를 만나 새로운 개혁을 시작합니다. 조광조는 성리학적 이상 정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는 파격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갑니다.
● 위훈을 삭제합니다. 중종반정으로 거짓 공신 추대된 인물을 공신록에서 삭제하고 받은 작위와 재물을 반납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 성리학의 기본인 소학과 향약을 강조하여 백성의 생활에도 실천할 수 있도록 강조했습니다.
●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현량과를 실시하였습니다. 글만 쓰는 과거만으로 인품을 판단할 수 없으니 지방 유관기관의 천거를 받아 관료를 뽑았습니다.
● 궁중에서 도교 행사를 치르는 소격서를 폐지하여 허황한 신앙을 타파했습니다.
● 왕실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를 혁파합니다.
조광조의 개혁으로 따르는 신하들이 많아지자 중종은 위기를 느낍니다.
야사에 의하면 조광조의 반대 세력이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주초를 합하면 조(趙)자가 됨. 곧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란 글자에 꿀물을 발라 벌레가 갉아먹게 하고, 이 나뭇잎을 중종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KBS 역사스페셜에서 같은 실험을 했는데 벌레는 꿀과 상관없이 나뭇잎을 갉아먹었습니다.)
중종은 조광조를 유배시키고 그와 관련된 사림파 관료들을 처형합니다. 이게 조선의 4대사화 중 3번째인 ‘기묘사화’(1519년)입니다.
조광조의 개혁은 실패로 끝납니다. 훈구파 대신들이 다시 정국을 주도합니다.
훗날 중종은 유배지로 사약을 보냅니다. 조광조는 사약을 마시기 전에 시를 한수 남기고 죽습니다.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는 것처럼 나라 걱정하기를 집을 걱정하듯 하라
청천백일이 아래 땅에 내리쪼여서 밝고 밝게 충성스러운 마음을 비치네
- 《정암집》 연보
중종은 39년 동안 재위하면서 57세에 병으로 죽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공적은 없습니다.
‘중종반정’으로 인하여 얼떨결에 왕이 되고 재위 기간 동안 신하의 눈치를 보면서 정국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기묘사화’를 일으켜 신하를 숙청하는 과감한 모습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