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치마폭에서 지낸 왕

이환

by 은빛바다


조선 제 13대 왕. 명종 (1534년~1567년 / 재위:1545년~1567년)



명종은 12세에 즉위합니다. 어린 나이라 그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합니다.


권력을 잡은 문정왕후는 선대왕이었던 인종의 세력을 온갖 구실로 유배시키고 사약을 내립니다, 그녀의 횡포가 거세어지자 ‘양재역 벽서사건’이 일어납니다.


여주(문정왕후)가 위에서 정권을 휘어잡고 간신 이기 등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락하고 있으니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을 가만히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도다


이런 벽서가 붙자 문정왕후는 기회로 삼아 조선 4대 사화의 마지막인 ‘을사사화’(1545년)를 일으킵니다. 6년 동안 사림파의 선비를 유배 보내고 사약을 내리는데, 그 기간에 죽은 선비가 100명이 넘습니다.


문정왕후의 남동생인 윤원형이 권력을 잡으면서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합니다. 윤원형뿐만 아니었습니다. 당시 훈구파 관료는 정사를 돌보지 않고 자기 재산만 늘리기 위해 벼슬을 돈 받고 팔았습니다.


수렴청정이 끝나자 명종은 국왕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왕이 된 지 20년이나 지났는데 문정왕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윤씨(문정왕후)가 주상을 함부로 꾸짖어 마치 민가의 젊은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대하듯 했다. 왕의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기지 않고 받들었으나 때로 후원의 외진 곳에서 눈물을 흘리었고 때로는 목놓아 울기까지 하였으니 왕이 심혈증을 얻은 것이 또한 이 때문이다.

- 명종 20년 4월 6일


문정왕후가 죽자 명종은 사림파를 많이 등용하면서 훈구파를 견제하려고 시도합니다. 때문에 본격적인 사림파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천원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입니다.


명종은 후사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중종의 다른 손자, 그러니까 명종의 조카뻘 중에서 세자를 찾습니다. 중전이 아닌 계비에서 낳은 후손으로 왕권을 이어가는 것을 ‘방계’라고 합니다.


중종의 7번째 아들인 덕흥군은 아들 3명이 있었습니다. 덕흥군은 술과 향락으로 20대의 나이에 요절합니다. 명종은 그의 아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자주 궁으로 놀러 오게 했습니다.


이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명종이 덕흥군의 아들 3명을 부르고 자신이 쓴 익선관을 벗어주었습니다.


머리 크기를 재기 위해서 써보라고 권하자 첫째와 둘째는 서로 씌워주면서 장난을 쳤는데, 셋째인 하성군이 임금님이 쓰신 것을 어찌 제가 함부로 만질 수 있느냐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명종의 마음에 들 거라고 짐작을 했던 것이지요. 명종이 그 사건 이후 하성군을 눈여겨 보았다고 합니다.


당시 문정왕후의 횡포와 훈구파의 사욕 때문에 정국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에게 돌아갔습니다.


백성은 세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반의 노비로 들어가거나 승려로 출가하고 심지어 도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임꺽정이 나타나 경기도 황해도 지역에서 활동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중앙 정부가 청렴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지금의 중앙 정부는 탐오가 풍습을 이루어 끝이 없기 때문에 수령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권세가를 섬기느라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도 백성은 하소연 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고는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 나도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행과 겁탈을 일삼는 건데 이를 어찌 백성의 탓이라고만 하겠는가. 진실로 정부가 청명하여 재물만을 탐하지 말고 어진 이를 수령으로 가려 뽑는다면 칼을 든 도적들이 송아지를 사서 고향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려 추적하여 붙잡으려만 한다면 또 뒤따라 일어나 장차에는 다 붙잡지 못할 것이다.

- 명종실록


명종은 병환으로 인해 34세 나이에 눈을 감습니다. 문정왕후가 죽은 뒤 고작 2년 뒤입니다.


하성군이 왕위를 이어 선조가 됩니다. 이제까지 혈통적으로 중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군’이라는 칭호를 받았지요.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혹시 내가 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먼 친척이 계승하자 머리는 좋을지 몰라도 세자 수업이라고는 전혀 받지도 못한 인물이 왕이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00년 동안 큰 전쟁이 없었습니다.


군사력은 서서히 약화되었지만 조정은 파벌 싸움에만 눈독을 들여 국방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왜구는 삼포왜란 을미왜변을 일으키며 서서히 한반도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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