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가 강하고 붕당을 조성한 왕

이균

by 은빛바다


조선 제 14대 왕. 선조 (1552년~1608년 / 재위:1567년~1608년)



명종 초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기였습니다. 훈구파가 사라지고 조정에는 사림파가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황 기대승 서경덕 이이(5천원권 주인공) 정철 유성룡 등 뛰어난 인물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림파가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면서 붕당정치가 나타납니다. 이 붕당은 관직을 얻기 위해 벌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조정은 관직에 한계가 있고, 지방에서 올라온 유생은 어떻게든 한 자리를 얻기 위해서 분당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선조는 이 붕당을 잘 이용했습니다. 관료가 뭉치면 통제하기가 어려워지니까 싸움을 조성했던 것이지요.




1589년 동인의 관료였던 정여립은 조정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벼슬을 버립니다.


전주로 돌아가 인근 사람들을 모아 신분적인 차별, 직업의 차별, 남녀의 차별이 없는 대동계를 조직합니다.


매달 모여서 술과 고기로 배부르게 먹고 글과 무예를 배웠습니다.


정여립이 추구하는 이상 사회를 만들여는 것이지요.


하지만 선조는 이런 모임을 역적으로 몰아 ‘기축옥사’를 일으킵니다.


동인만 아니라 정여립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혐의를 씌웠는데 6년 동안 무려 1000명이 죽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백성에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의주로 도망칩니다. 명나라로 망명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의병을 모아 싸우라고 남겨둡니다. 광해군은 황해도 함경도 지역을 돌며 민심을 수습하고 의병장을 독려하며 전쟁 물자를 지원하는 등 왜구와 싸우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이런 행동은 왕실의 이미지를 회복하며 백성의 큰 지지를 받습니다.


질투심이 많은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나자 의병장이나 장군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역모를 일으킬 혐의를 씌우며 감옥에 가둡니다. 대표적으로는 이순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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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 <명랑>(2014년). <한산: 용의 출연>(2021년). <노량:죽음의 바다>(2023년) 이순신 장군의 대격전


이 배경에는 1596년에 일어난 ‘이몽학의 난’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자 출신은 이몽학은 반란군을 모으면서 ‘의병장 곽재우 김덕령 등이 우리와 같이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이 소문만 듣고 선조는 나라를 위해 싸운 의병장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목숨을 잃게 만듭니다. 이후 의병 활동이 줄어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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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년).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에서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선조는 궁궐을 비우고 도망을 칩니다. 이몽학은 모두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궁궐로 향하지만……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는 인목왕후를 중전으로 맞이합니다. 이 사이에서 적장자인 영창대군이 태어납니다.


이미 세자로 책봉되었던 광해군은 당황합니다. 영창대군이 자라면서 세자의 자리가 넘어갈지도 모르니까요.


1608년 2월 1일 선조는 56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납니다.


미시에 찹쌀밥을 진여 했는데 상(선조)이 갑자기 기가 막히는 병이 발생하여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 광해군일기


이에 광해군의 선조 독살설이 있는데 선조가 죽은 뒤 시신에게서 독에 대한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근거는 없습니다.


광해군은 왕이 된 뒤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 보냅니다. 나중에 왕이 되려고 했다는 역모의 혐의를 씌워 죽여버립니다. 광해군일기에 의하면 영창대군을 방에 가두고 온돌을 뜨겁게 달궈 증기로 쪄서 죽입니다.


이때 영창대군의 나이가 8살이었습니다.


강화부사 정항이 고을에 도착하여 위리 주변에 사람을 엄중히 금하고 음식물을 넣어주지 않았다. 침상에 불을 때서 눕지 못하게 하였는데 의(영창대군)가 창살을 부여잡고 밤낮으로 울부짖다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 광해군일기 6년 2월 10일


영의정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나자 고향으로 내려가 7년 동안 전쟁을 기록합니다. 바로 ‘징비록’입니다. ‘이는 스스로를 미리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다만 뒷날을 위하여 경계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을 써 둘 따름이다. -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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