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조선 제 15대 왕. 광해군 (1575년~1641년 / 재위:1608년~1623년)
광해군은 전쟁복구 사업을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업적을 남깁니다.
● 가장 큰 업적은 ‘대동법’ 시행입니다. 당시 지방에서 세금은 그 지역의 특산물로 냈습니다. 이게 많은 폐단이 생기자 세금을 쌀로 내는 대동법으로 바꿉니다. 전쟁을 치른 뒤 백성에게는 많은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또한 이제까지 세금을 마을 단위로 받는 대신에 토지 소유만큼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많은 땅을 가진 관료에게 부담을 주는 제도였습니다.
● 중립외교. 조선은 명나라를 사대했습니다. 후금이 일어나 세력이 강해지자 명나라는 조선에 군사를 보내달라고 요구합니다. 광해군은 군대를 보내지만 사령관에게 적당히 봐서 투항하라는 밀서를 줍니다. 명나라나 청나라나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고 양쪽에서 호감을 얻는 방식을 취합니다.
● 임진왜란 이후 의료체계를 다시 확보하기 위해 허준의 <동의보감>을 전폭적으로 지원합니다.
책의 이름은 동의보감인데 대게 중도의 고금 방서를 널리 모은 다음에 분류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다.
- 광해군일기 1610년 8월 6일
● 양전사업. 전국에 토지를 측량하고 세금을 낼 토지 소유자 조사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국가 재정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경복궁을 재권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무리한 공사로 인해 백성의 원망을 사기도 했습니다.
♦ 광해군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 광해군을 대신하여 왕 노릇하는 광대 하선. 그를 통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지도자가 뭔지 생각해 봅니다.
광해군은 재위 기간 동안 반정에 대해 불안하게 여겼습니다. 가차없이 반대 세력을 제거해서 서서히 지지기반을 잃어갑니다.
특히 역모에 대하여 잔인하게 처형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계축옥사’입니다.
1613년 문경새재에서 상인을 죽이고 은 수백 냥을 약탈 서자 6명이 잡혔습니다. 그들을 잡아서 고문하니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한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고 실토합니다.
광해는 영창대군을 강화로 유배를 보내 죽이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배시킵니다. 또한 역모의 구실로 서인을 비롯한 반대 세력을 100명 넘게 처단합니다.
이게 ‘인조반정’의 계기가 됩니다.
1623년 3월 능양군(인조)과 서인들은 평안도와 경기도 이천에서 주둔한 군사 약 1400명을 이끌고 홍제동의 한 집에서 모입니다.
사실 능양군은 광해군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습니다. 그의 막내 동생인 능창군이 역모 혐의로 죽자 아버지까지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만 것입니다.
반란군은 새벽 2시경에 창의문을 통하여 궁궐로 들어옵니다.
광해군은 내시의 등에 업혀서 도망치다가 민가로 숨어 버립니다. 아마 광해군은 그 동안 자신의 행적을 통해 반란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사견문>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광해군은 항상 궁중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사람을 시켜 찾게 하여 찾지 못하면 기뻐하고 찾으면 기뻐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변이 있을까 염려해서 몸 숨기기를 연습한 것이다.
- 공사견문
반란군 세력은 광해군을 잡아 서궁으로 데려갑니다. 인목대비 앞에 무릎을 꿇리자 그녀는 광해군의 목을 치라고 제안하면서 세 가지 폐위 이유를 말합니다.
형과 아우를 살해하고 조카들을 모조리 죽였으니 서모를 때려죽이려 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여러 차례 옥사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가혹하게 죽였다.
민가 수천 호를 철거시키고 두 궁궐을 창건하는데 있어 토목 공사의 일이 10년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선왕(선조)께서 40년간 보위에 계시면서 지성으로 명나라를 섬기시어 평생에 한 번도 서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으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광해는 은덕을 저버리고 천자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배반하는 마음을 품고 오랑캐(청나라)와 화친하였다.
- 광해군일기 1623년 3월 14일
폐위된 광해군은 18년 동안 가족과 같이 유배생활을 합니다, 강화–교동도–제주도로 돌면서 갖은 고초를 겪는데요.
아들인 폐세자는 땅굴을 파고 유배지에서 탈출하려다가 발각되자 자살합니다. 폐세자빈도 이 광경을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요. 아내인 폐비 유씨도 화병으로 죽고 맙니다.
제주도로 유배 가는 도중에는 호송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가 자신은 윗방 광해군은 아랫방에서 자도록 하는 수모를 줍니다.
제주도에서 나인(심부름을 하는 여자관리)은 한 나라의 왕이었던 광해군에게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1641년 광해군은 제주도에서 67세 나이로 죽습니다. 그곳에서 광해군이 지은 시입니다.
가고픈 마음에 봄풀을 실컷 보았고 나그네 꿈은 제주에서 자주 깨었네
서울의 친지는 생사소식조차 끊어지고 안개 낀 강 위의 외로운 배에 누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