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
조선 제 19대 왕. 숙종 (1661년~1720년 / 재위:1674년~1720년)
숙종은 14세로 왕위에 오릅니다. 지금이라면 중학교 1학년 때 국왕이 된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나이 어린 세자가 왕이 되면 수렴청정이 이루어지는데 숙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송논쟁 등 붕당정치에 휘둘렸던 아버지 현종과 달리 과감하게 환국 정치를 휘두르면서 왕권을 강화합니다.
환국(換局)은 쉽게 말해서 조정을 뒤엎어 새로운 관료로 갈아치우는 것입니다. 숙종은 세 번의 환국이 이루어집니다.
1680년. 경신환국이 일어납니다.
당시 남인의 대표인 허적이 복선군을 왕으로 삼으려고 그의 형제들과 역모를 도모한다는 고변이 들립니다.
당시에 허적은 영의정이고, 복선군은 숙종과 오촌 관계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남인의 세력을 견제하려던 숙종은 이와 관련된 신하에게 사약을 내립니다.
또한 100여 명의 남인이 처벌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납니다.
이제 경쟁자인 서인이 정권을 잡습니다.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납니다.
궁녀였던 장희빈이 아들(경종)을 낳습니다. 장희빈은 남인 세력이었습니다.
숙종이 이 아들을 원자로 임명하자 당연히 서인에게서 반대가 일어납니다.
이에 숙종은 서인의 대표인 송시열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고 사약을 내립니다.
서인의 대부분 관료가 유배를 당합니다.
숙종은 중전 인현왕후를 궁궐에서 쫓아내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올립니다. 정국의 주도권은 다시 남인이 잡습니다.
하지만 남인은 언제 다시 숙종이 환국을 일으킬지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1694년. 갑술환국이 일어납니다. 역시 남인의 집권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에 숙종은 새로운 후궁인 숙비 최씨를 총애하면서 장희빈과 사이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남인이 장희빈을 위해 이 숙빈 최씨를 독살하려고 한다는 고변이 올라옵니다.
이에 숙종은 장희빈을 중전에서 내몰고, 폐비된 인현왕후를 다시 중전으로 앉힙니다.
7년 뒤 ‘무고의 옥’이 터집니다. 1701년 인현왕후가 병을 앓다가 죽자 장희빈이 신당을 차려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사실이 발각된 것입니다.
숙종은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리고 그 일에 관련된 궁인과 무녀도 죽입니다.
이후 남인 세력은 쇠퇴합니다. 서인은 강경파 노론과 온건파 소론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 세 차례 환국으로 인해 약 50여 명이 사약을 받았습니다. 예송논쟁으로 당파 싸움을 일삼던 신하들은 숙종의 눈치만 살피게 됩니다.
숙종은 46년 동안 재위합니다. 이는 영조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기간입니다. 그 동안 정치, 국방, 문화, 경제 등에서 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 공정왕에서 정조로 묘호를 내립니다. 또한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왕권을 복권시킵니다. 역시 사육신도 복권을 시킵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의도이지요.
●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합니다.
● 상업의 발달이 두드러지자 ‘상평통보’를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킵니다.
● 백두산 정계비를 세웁니다.
● 북한산성을 조성하고, 한양도성을 대규모로 보수합니다.
● 처음으로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를 조성합니다.
흔히 드라마에서는 숙종을 장희빈의 치마바람에 휘둘린 왕으로 표현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권 강화를 위해 아내까지도 내치는 정치적인 왕이었습니다.
남인과 서인의 지독한 분파 싸움이 없었더라면 숙종은 환국을 일으키며 조정을 뒤엎는 일까지는 벌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 현종이 예송논쟁으로 시달리다가 죽은 것을 보면서 자신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먹은 것 아닌지 짐작합니다.
국가가 불행해 동인, 서인을 표방한 이래 백 년이 되었는데, 날이 갈수록 고질이 되고 있으니, 한탄스러움을 금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좁고 작은 데다 문벌을 숭상해 사람을 등용하는 길이 이미 협소하다. 그런데 한쪽이 진출하면 한쪽은 물러나 나라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또 대부분 막혀 있으니,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 <숙종실록> 권 65, 숙종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