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서 묻혀 살다가 개혁을 시도한 왕

철종 이변

by 은빛바다


조선 제 25대 왕 (1831년~1863년 / 재위:1849년~1863년)



이원범은 역적 혐의를 쓰고 몰락한 왕족으로 강화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영의정과 많은 군사들이 그를 데리고 가기 위해 강화도로 몰려옵니다.


이원범은 아버지처럼 역적 혐의를 씌우는 줄 알고 작은형과 산속으로 도망칩니다. 그 과정에서 작은형이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순정왕후와 안동 김씨 세력은 많은 왕족 중에서 강화도 산골짜기에 묻혀서 살고 있는 이원범을 왕으로 추대했을까요?


아마 허수아비 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철종은 순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으면서 정치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왕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갑니다.


특히 강화도에서 어렵게 자란 배경을 통해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철종은 22세가 되자 직접 친정에 나서며 왕으로써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당시 안동 김씨의 부정부패는 철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김조순의 아들과 손자 등이 계속 뒤를 이어 권세를 마음대로 휘둘렀는데, 그 교만하고 사치스러움과 음란하고 잔인함이 끝이 없었다.

- 황현 <오하기문>


자연히 철종과 안동 김씨 세력 사이에 대립이 일어납니다. 철종은 왕의 권위를 내세우며 신하를 윽박지르는 경우가 자주 일어납니다.


감사나 수령을 막론하고 부정한 물품을 받은 더러운 행위가 드러나면 갑절을 더한 형률로 다스리겠다.

- 철종실록. 철종 5년 1월 25일


백성을 짓누르는 가장 큰 폐단은 삼정의 문란이었는데, 그중에서 환곡이 가장 지독했습니다. 환곡은 관청에서 겨울철에 먹을 쌀을 백성에게 나눠주고 이듬해 약간의 이자를 받아서 돌려받는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관청은 이자를 엄청나게 높여서 받거나 심지어 나눠주지도 않은 환곡을 돌려받아서 백성의 고혈을 빨았습니다.


환전은 백성에게 가장 뼈에 사무치는 폐단이 되었다. 심지어는 나눠주지도 않은 곡식을 가지고 거둬들이니 우리 백성이 장차 무엇으로 생계를 꾸리겠는가?

- 철종실록. 철종 3년 10월 22일


시골 백성이 곡식을 받아 짊어지고 지나가는 것을 본 일이 없다. 한 톨의 곡식도 일찍이 받아온 적이 없는데도, 겨울이 되면 집집마다 곡식 5~7석을 내어 관청의 창고에 바치는데…… 무릇 ‘환’이라는 것은 되돌린다는 뜻이며 갚는다는 뜻이다. 무엇 때문에 ‘환’자를 쓰는가?

- 정약용 <목민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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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종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 <군도: 민란의 시대>(2014년).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던 시대. 백성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철종의 노력은 안동 김씨와 부딪치면서 의욕을 잃어갑니다. 마지막 재위 기간에는 술과 여자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33세의 나이로 후사도 없이 승하합니다.


철종에게는 5남 6녀의 자식이 있었지만 5남 5녀는 결혼도 하기 전에 사망합니다.


마지막에 남은 딸도 결혼은 하지만 13세에 죽습니다. 안동 김씨 세력은 왕위를 이을 다른 방계를 찾아야 했습니다.


바로 고종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철종을 끝으로 매듭을 짓습니다.


실록은 왕이 죽으면 사관들이 그 동안 기록을 모아 춘추관에서 만드는데, 고종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죽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록은 일본의 관여해서 실록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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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종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년). 우리나라 최초의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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