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아 2.
이 즈음 당신은 아파트를 구입한다. 모은 돈을 전부 거기에 턴다. 물론 은행에서 대출도 받는다.
지금 사는 집은 아버지가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매달 생활비가 나온다. 자식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다. 약간의 돈을 덜어 당신에게 도움을 준다.
간신히 마련한 아파트로 당신은 분가하고, 이제까지 10년 넘게 어머니 수발을 들었으니 아버지를 모시는 몫은 장남인 큰형에게 넘기려고 하는데, 여의치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형은 부산스럽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주아에게서 제발 살려 달라고 전화가 왔어.”
그 여자가 이번에는 주아에게 빨대를 꽂고 있다며 큰형은 무척 흥분하면서 거친 목소리로 떠든다.
마치 빨대를 꽃아 피를 뽑아 먹듯이 큰형에게 돈이 생기면 그 여자가 싹 갖고 갔다. 이제 큰형이 없으니 주아에게 빨대를 꽃은 것이다.
그 여자는 주아가 월급을 타면 싹 갖고 갔다.
어느 날 주아가 감기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는데 통장 잔액이 2만 386원이다. 버는 대로 지 엄마가 카드로 빼 간 것이다. 어디에 돈을 썼는지 알지도 못 한다.
주아는 이러면 안 되겠다, 자신도 살아야겠다는 위기가 든다. 새로 통장을 개설하고 그 여자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그 여자는 자기 딸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 큰형을 대했던 것과 똑같이 한겨울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내일 출근하는 자기 딸이 잠을 못 자도록.
악착같이 자기 손에 돈을 쥐려고 하는 그 여자의 태도, 아마 그녀의 어머니에게 배운 것 같다.
큰형의 장모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여자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 돈을 싹 갖고 갔다. 이제까지 내가 너를 키웠으니, 네가 번 돈은 당연히 내 것이라는 식이다.
당신은 그런 집안의 가치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주아는 자기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큰형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다.
이혼 후 가방만 달랑 들고 나온 큰형의 주장과 다르다. 주아에게 7천만 원 전세를 얻어준다. 당신이 사는 집에서 가까운 오피스텔이다.
아마 그 여자는 주아가 집에서 나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월세 보증금 낼 돈도 없을 테니까 버티다가 자기에게 항복하고 월급 통장을 내놓으리라 여겼는데, 전세 오피스텔을 얻었으니 놀랄 일이다.
주아는 오피스텔 전세금이 회사에서 받은 대출금이라고 속인다. 도무지 속사정을 모르겠는데 만일 아빠 돈이라고 하면 그 여자에게 뺏긴다고 했다.
당신은 고민하다가 주아를 만나보기로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5개월 만이다.
장례식 때와 달리 주아의 얼굴은 흑색에다가 광대뼈가 튀어나온 반쪽이다.
도대체 어떤 고생을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몇마디 나눠보지만 20대 중반의 나이에 갖는 자존감이 없다.
“할머니 편찮으신데 왜 만나러 오지 않았니?”
당신이 가슴에 담은 질문을 한다. 그게 평생의 한이다. 주아가 주저하다가 간신히 대답한다.
“거기 가면 엄마가 저를 죽여버린다고 했어요.”
그 여자는 우리 집안을 철천지 원수로 취급하고 있다. 이거 성격 탓으로만 여기기에 문제가 많다.
장례식장에서 아무도 자기를 아는 척하지 않아서 주아는 그냥 나왔다고 한다. 솔직히 그건 어른들의 문제도 있다.
당신이 저녁 식사로 돈가스를 사주자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회사 생활을 하는 애가 제대로 밥은 먹고 다니는지 의혹이 일어난다.
“요즘 생활하는 건 어떠니? 큰형한테 들어서 조금 알고 있지만.”
문득 고기를 썰던 주아의 손이 멈춘다. 눈물이 그렁거린다.
“신은 인간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주아가 말을 잇지 못 한다.
핏줄은 어쩔 수 없다. 주아는 공갈 젖꼭지를 물고 포대기에 싸 있을 때부터 봤던 당신의 조카다. 명절이 되면 자기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와 거실을 발랄하게 뛰어다니던 그 아이다.
당신은 애틋한 마음으로 묻는다.
“혹시 필요한 거 없니? 불편한 거 없어?”
주아가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지금 쓰는 노트북이 너무 느려서 업무를 보기가 힘들어요.”
당신은 홈플러스에서 신형 노트북을 사준다. 주아는 고마워하면서 우편으로 날아오는 주문계약서를 걱정한다.
“만일 새 노트북을 산 걸 알면 엄마가 뺏어갈 거예요.”
거기에서 당신은 완전히 그 여자에 대해 포기한다. 상식적인 집구석이 아니구나.
주문계약서 보내는 주소를 당신이 사는 집으로 적는다. 주아에게는 회사에서 빌린 거라고 거짓말로 둘러대라고 한다.
도대체 큰형은 어떤 가장이었던 걸까.
오피스텔로 이사한 주아는 차츰 안정을 찾는다. 큰형이 퇴근하면서 자주 들여다본다. 이혼한 아버지의 미안함 때문인지 주아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려고 한다.
반찬을 만들어 주아의 냉장고에 채워준다. 오피스텔에 햇빛이 들지 않아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신의 집 세탁기에 넣는다. 심지어는 주아를 데리고 와서 욕실에서 샤워를 하라고 한다. 찜질방에 가면 되는데 돈이 아깝다는 이유다. 아버지가 쳐다보든 말든 식탁에 앉히고 밥을 먹인다. 오피스텔에서 먹으라고 비상용으로 저장해 둔 햇반을 건네준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액세서리를 사용하라고 가방에 넣어준다.
어린 시절 큰형이 모빌처럼 천장에 단 수십 개의 조립형 비행기가 떠오른다. 큰형은 이 집을 어떻게 보는 걸까.
뒷방 노인네가 된 아버지는 주아의 방문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 여자의 딸이니까. 방문을 닫고 주아가 나갈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주아도 그 사실을 안다. 결국 아버지를 피해 더 이상 집에 오지 않는다. 큰형은 계속 반찬을 만들어주고 주아의 팬티까지 우리집에서 세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