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미국 라스베이거스

by 시옹
KakaoTalk_20190630_185221550_05.jpg

"What happens in Vegas stays in Vegas"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일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머문다"

영화 <행오버>에서 유명해진 슬로건이다. 미국 네바다주의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가진 이미지는 남다르다. 죄책감 없는 일탈, 성인들의 놀이터,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 도시 전체가 유흥의 메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베가스를 감당하기엔 나는 아직 나이만 성인인 꼬마였다.

이런저런 해외생활과 시청각자료(?)들로 마약, 도박, 섹스 등 알건 다 안다 하더라도 우선 생김새부터 앳됐었다. 하지만 매번 나와 그림체가 비슷한 여행지만 편식할 수는 없는 법.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나도 베가스 스트립(Strip)을 걷기 전 간단하게 얼굴만 한 칵테일 음료를 주문했다. 달달한 간식 같은 음료였지만, 도수가 꽤나 높아서 마시다 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취할 것 같았다.




KakaoTalk_20190630_185221550_04.jpg
DSC05593.jpg
뉴욕뉴욕 호텔(Newyork Newyork Hotel)
DSC05642.jpg
DSC05686.jpg
좌 플래닛 할리우드 호텔 | 패리스 호텔(Paris Hotel)
DSC05680.jpg
DSC05666.jpg
좌 벨라지오 호텔(Bellagio Hotel) | 우 미자리 호텔(Mirage Hotel)

칵테일 한 통을 마시며 걸어 다니다 보니 발바닥에 쿠션을 단 것처럼 바닥이 보송보송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좀처럼 입을 다물줄 모르는 도시 소음과 밤을 낮만큼 밝게 비추는 전광판과도 조금씩 친숙해졌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거리는 마치 커다란 성인용 테마파크 같았다. 일반 관광객인지, 행사를 뛰는 직원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최소한의 신체부위만 가린 화려한 코스튬을 입고 거리를 장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트립 거리에는 라스베이거스 유명 호텔들이 줄지어있다. 분수쇼가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부터 스트립의 실세 MGM 호텔, 뉴욕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뉴욕뉴욕 호텔, 파리의 에펠탑을 그대로 따라 해놓은 패리스 호텔까지.

마치 내 취향을 모르는 남자를 소개팅에서 만나 그의 번지수 잘못된 자기 어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유치하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많은 노력과 자본이 투자되었고, 대단하고 표현하기엔 빈 껍데기뿐이었다.




시저스 팰리스(Cascars Palace)
DSC05664.jpg
DSC05696.jpg
좌 베네시안 호텔(Venezian Hotel) | 우 엑스칼리버 호텔
DSC05670.jpg
KakaoTalk_20190630_185151676_11.jpg
플라밍고 호텔(Flamingo Hotel)
DSC05660.jpg
DSC05661.jpg
좌 트레져 아일랜드 호텔(Treasure Island Hotel) | 우 윈 & 앙코르 호텔(Wyhn & Encore Hotel)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나처럼 건전하게 하게 된다면 이 스트립 거리 호텔투어가 주축을 이룬다.

전체적으로 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로지 눈의 즐거움을 위해 화려한 치장을 한 호텔들에게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꼈다. 돈에 의해서, 돈을 위해서 도시 전체가 설계된 느낌이랄까.

그런 만큼 돈을 쓰고 싶은 관광객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라 볼 수 있다.

좀 더 투자하면 더 좋은 전망이 있는 더 좋은 룸에서 머물 수 있고, 더 좋은 서커스 쇼를 더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고, 더 멋진 음식을 더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다. 물론 이건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해당되는 일이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더 가치가 있다나 뭐라나.




하지만 라스베이거스를 굴러가게 하는 자본은 서커스쇼나 호텔에서 오지 않는다.

돈을 가져다주는 베가스의 진짜 꽃은 카지노다. 어느 호텔을 가던 가장 접근성이 좋은 1층에는 슬롯머신과 카드게임 부스들이 즐비해있다.

그리고 슬롯머신만큼 많은 백인 할머니들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머신을 돌리고 계신다.

"할머니들은 카지노 시장의 플랑크톤 같은 사람들이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아무리 여러 명이 모여도 큰 존재감은 없지만, 그들의 슬롯머신 카지노 머니가 라스베이거스라는 생태계를 먹여 살린다.




KakaoTalk_20190630_185151676_28.jpg

2019년의 베가스를 회상하면서 유난히 삐딱한 단어들이 많이 떠올랐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참 역설적인 존재다. 가난한 지갑사정 때문에 스트립에서 벗어난 허름한 호텔에 머물렀던 나와는 달리 유명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꼬운 동시에 부러웠다.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고 스트립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며 위축되기도 했다. 클럽에서 테이블을 잡고 술판을 벌인 또래 아이들을 보며 나도 끼고 싶다는 욕심도 들었다.

베가스의 매력을 찬양하는 자들을 비판하기엔 나 또한 자본주의의 노예인 것을.

어쩌면 이 삐딱한 마음은 자본주의를 향한 비판이 아닌, 내 열등감의 낯짝일지도 모르겠다.



Las Vegas, Nevada, The United States_ Key word
- Welcome to Fabulous Las Vegas Sign
- The Strip (Las Vegas Boulevard)
keyword
월요일 연재